쇠뿔도 녹일 듯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여름 어느 날 그가 남평주조장을 찾아왔다. 너무 오랜만인지라 반가움에 얘기를 나누느라 그의 달라진 모습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손가락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대형어류박제작업을 직접 하다 큰 가시에 찔려 몇 차례 수술과 오랜 병원 신세까지 졌지만, 결국 손가락 하나를 잃고 말았다고 했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도 했다. 박물관이 뭐길래 손가락까지 잃다니.
그는 이렇듯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온 해양인이다. 수십 년간 해양 생물의 기록과 표본을 수집하여 문화로 박제해 온 박물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다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애정은 그의 삶을 항해하게 한 거대한 스크루였고, 그 열정은 오늘날 박물관의 기초가 되었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그는 완도수산고등학교를 나와 여수수산대 어업과를 졸업했다. 1급 산업실기 교사 자격을 취득하며 교육에 대한 꿈도 품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모 원양어선회사에 들어가 선장이 되어 오대양을 누볐다.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인간과 바다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온몸으로 배우는 과정이었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임양수 관장의 이야기다. 거친 파도와 바다의 생명과 함께한 세월은 그가 해양 자연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다.

1993년, 임양수는 광주광역시 중외공원 수산전시관 관장을 맡게 되면서 박물관인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전시관은 생물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지만, 임양수는 그 안에서 교육과 체험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미래를 지탱하는 생명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러다 2002년 12월, 해남 땅끝에 해양자연사박물관을 설립하게 된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은 그가 직접 수집한 5만여 점의 해양 표본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해양 생물의 다양성과 바다가 품은 생명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임 관장은 평생의 노력을 이 공간에 담고자 했다. ‘저는 박물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 세대를 잇는 문화와 교육의 장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이를 실천해보고자 박물관을 열기로 하였습니다.’라고 개관사에서 그는 밝힌 바 있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앞에서 임양수 관장(2026.4)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은 그동안 자체 소장품으로 국립광주과학관 특별기획전 《Under the Sea》, 《미스터리 상어의 신비》, 《태초! 해양생물과 공룡의 만남》, 《세계조각탈 특별전》 등 다채로운 관 내외부 전시를 개최하며 수많은 관람객이 바다와 생명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해남공룡박물관, 목포바다어린이과학관, 국립광주과학관 등 여러 기관과의 공동 전시 또한 이어오며 지역 간, 기관 간 협력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교육자로서의 사명감도 놓지 않았다. 완도수산고등학교와 신안 압해도고등학교에서 산업실기교사로 강의하며, 청소년들에게 실습과 체험을 통해 지도했고, 여러 차례 우수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바다를 통해 과학적 호기심을 키우고, 더 나아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임양수의 노력은 다양한 기관으로부터도 크게 인정받았다. 해남군수와 전라남도 도지사의 감사패를 비롯해 교육과학기술부 창의체험 교육프로그램 우수기관상, 한국박물관협회의 박물관 노닐기 우수기관상, 해남군 자랑스러운 해남인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그리고 2019년에는 대통령 표창(박물관·미술관 발전 유공)을 받기도 했다. “이 상들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지역사회와 함께 일궈온 성과의 증표라 생각합니다.” 임양수 관장은 겸연쩍게 말했다.

또 그는 2019년 신안 자은도 세계조개박물관에 다양한 희귀 조개류들을 기증하여 환경의 지표가 되는 패류를 활용한 박물관 설립에 일조해, 지금은 그 박물관의 명예 관장으로 환경과 해양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그의 계획과 비전은 명확하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을 해양과 환경 교육의 선도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바다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이자, 인류가 살아갈 미래의 생명선이다.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의 표본을 모아 두는 곳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세대가 환경과 공존을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 되어야 한다. 임양수는 박물관을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해양 생물의 다양성을 체험하고, 느끼며 환경보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동시에 해남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관광·연구의 허브로 만들어, 지역을 넘어 세계가 함께하는 해양환경 교육의 모델로 자리매김하도록 힘쓰겠다고도 했다. 



25m, 3t 대왕고래뼈
뼈 길이 25m, 뼈 무게만 3톤에 달하는 대왕고래 뼈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임양수의 꿈은 땅끝에서 시작된 이 작은 박물관이 단순히 한 지역의 유산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공간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바다와 자연을 이해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며, 환경을 지켜내는 방법을 모색하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땅끝은 지리적으로는 한반도의 끝이지만, 그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싣고 대양으로 나아가는 출발선이다. 그래서 박물관 역시 아이들에게는 과학적 호기심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며, 방문객들에게는 바다와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렇듯 임양수의 박물관과 바다, 환경에 대한 의지와 신념은 단호했다.

임양수는 앞으로도 남은 생을 바다와 환경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돛이 되겠다고 말한다.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표본을 수집하고, 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며, 교육프로그램을 확장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환경의 가치를 체득하도록 돕고, 나아가 이들이 지구를 지켜나갈 주체가 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땅끝에서 출발한 우리 박물관은 작지만, 그 속에 담긴 바다의 이야기는 크고 깊습니다. 저는 이 작은 공간이 언젠가 세계와 소통하는 해양문화와 환경 교육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손가락까지 잃어가며 걸어온 길의 결실이자, 앞으로도 개척해야 할 항로라고 임양수는 단호히 말했다.


- 임양수(林亮秀, 1959- ) 전남 완도 출생. 여수수산대(현 전남대) 어업과 졸업, 1급 산업실기교사 자격 취득, (주)한모통상 원양어선 선장, 광주광역시 수산전시관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 한국과학관협회 이사, 해남군문화관광발전협의회 위원, 전라남도 주민참여예산위원, 목포대학교 서남해개발연구위원, 완도해조류박람회 자문위원, 전라남도박물관협회 부회장, (주)해양교육문화연구소장 등 역임. 현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설립자 겸 관장, 한국사립박물관협회 이사, 해남문화관광재단 이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2016), 박물관 유공 대통령상(2020),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기관상(2012), 경기도지사 표창(2011), 자랑스러운 해남인상(2013)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