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근대기 신소설가 이해조(1869-1927)가 판소리 〈춘향전〉을 개작한 소설이다. 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뒤 같은 해 보급서관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소개하는 책은 1929년 박문서관 발행본이다.
당시에는 창극과 판소리 공연 문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고, 신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해조가 개작한 『옥중화』 또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를 간행한 출판사들은 다양한 판본의 『옥중화』를 발간하면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또 주목할 점은 1908년경부터 등장한 표지화이다. 소설의 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표지화와 삽화가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는 창극과 판소리 공연 문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고, 신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해조가 개작한 『옥중화』 또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를 간행한 출판사들은 다양한 판본의 『옥중화』를 발간하면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또 주목할 점은 1908년경부터 등장한 표지화이다. 소설의 극적인 장면을 묘사한 표지화와 삽화가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표지. 이해조, 『獄中花(옥중화)』, 박문서관, 1929, 157쪽, 20×14cm
내지. 리도령이 광한루에 츈향을 부르다
이 책의 표지화와 삽화를 그린 이도영(1884-1933)은 안중식을 사사한 서화가로, 개화파 인사들과 교유하며 언론·교육·출판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초등소학』(1906)의 삽화를 제작하였고, 『대한민보』 창간호(1909)에 최초의 시사만평을 게재하였으며, 이인직의 『치악산』(1908) 등 여러 신소설의 표지화와 삽화를 제작하였다. 『옥중화』에서는 1913년 재판본부터 이도영의 표지화가 등장하며, 1914년 5판본의 변형된 표지화가 현재 소개하는 1929년 박문서관(4판) 발행본까지 이어졌다.
삽화는 판본을 거칠 때마다 점차 추가되었다. 1921년 발행본부터는 춘향과 이도령의 채색도판 1점을 포함하여, 광한루에서의 만남과 이별, 춘향의 옥중 장면, 어사가 된 이도령의 등장 등 주요 장면을 담은 총 11점의 삽화가 수록되었다. 다만 현재 소개하는 책에는 채색도판이 탈락되어 있다. 이 책은 근대기 문학과 예술, 출판문화의 변화와 당시 대중문화의 흐름, 그리고 인물들의 교류와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