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한 탄생 100주년 특별전: 아름다움이라는 정직한 응답


 

필자는 지난 월간 춤2월호에서 금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미술인 10명을 언급한 바 있다. 그 중에서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화가이자 판화가 김상유의 전시 쉽게 닳지 않는 사람에 이어, 한국 미학의 거목을 조명하는 조요한, 사유의 형식들 :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개최되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경(怡耕) 조요한(1926-2002)은 서구의 보편적 미학 담론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동양의 고전적 가치를 융합하여 한국 미학의 학술적 토대를 구축한 1세대 미학자다. 이번 전시의 부제이자 고대 그리스 격언인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khalepà tà kalá)’는 그가 평생을 두고 고뇌했던 미학적 탐구의 깊이를 고스란히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그가 일궈낸 철학하는 삶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함경북도 경성군의 개화 문명 속에서 성장한 유년기를 지나, 특히 성북동 시절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과의 각별한 인연이 눈길을 끈다. 누나의 영향으로 학생 시절 김환기 부부의 집에 머물며 시작된 교류는 훗날 환기재단 초대 이사장 역임으로 이어졌다. 1964년 뉴욕의 김환기가 그에게 보낸 편지 속 여보소, 철학자! 좀 가르쳐주어요.”라는 문구는 두 거목 사이의 깊은 신뢰와 예술적 공명을 여실히 드러낸다.

 

서구 철학에 천착하던 그의 시선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이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점차 현실 공동체로 향했다. 1964년부터 2년간 이어진 독일 유학은 이러한 변화를 심화시켰다. 전시장에는 당시 그가 철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 전반과 전후 유럽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한 기록들이 공개되어 있다. 이러한 사유의 여정 끝에 탄생한 첫 저작 예술철학(1973)은 한국 미학의 불모지를 일궈낸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서구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 기술 미학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한국 조형미의 성격을 별도의 장으로 구성하여 우리 미의 특수성을 정립하려 분투했다.


(왼쪽부터)  현대미술관회 설원식 회장, 호암미술관 홍라희 관장, 이경성 미술평론가, 

일본 소케츠미술관 테시가하라 관장, 초대 문화부 이어령 장관, 전 숭실대 조요한 총장 

출처 가나아트, 1998 봄

 

조요한은 상아탑에 갇힌 이론가가 아니었다. 10·26 사태 이후 찾아온 서울의 봄이 짓밟히자, 그는 1980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이 결단으로 교수직에서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이는 미학자로서 다듬어온 정직한 사유의 필연적 결과이자 내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자가 외부의 부조리를 묵과할 수 없다는 미학적 실천이었다. 1984년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복직한 그는 제6대 총장을 지내며 대학교육 정상화에 헌신했다. 퇴임 후에는 한국미를 비균제성자연순응성으로 정의하며 후학들의 비교문화 연구를 당부한 마지막 저서 한국미의 조명(1999)을 남기고 200276세에 타계했다.

 

이번 전시는 IBLee인스티튜트와 협업으로 친필 원고, 강의록, 서신, 육성 녹음 등 100여 점의 아카이브와 소장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인터뷰 영상에서는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은기 목원대 명예교수 제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 조요한의 면모를 다각도로 전하며, 57일 개막행사와 전에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전문가들 6명이 모여 그의 삶과 학문이 지니는 동시대적 가치를 깊이 있게 논의했다. 전시기간 6주 동안 목요일 상명대학교 미래100년관에서 강연도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생애를 회고하는 자리가 아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 조요한이라는 거울을 통해 그가 표상했던 시대정신을 아우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진중한 사유의 장이다. 

 월간 춤 2026.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