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역사


 

금년 2026년 들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 18일 싱가폴 국립대 쩡치첸과 126일 도쿄대 대학원 신은주가 박사 논문 준비로 찾아왔고, 3월에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이 내방했다. 울산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대전 카이스트미술관, 인천시립박물관 에서 자료 열람과 대여를 진행했다. 514일 충북문화재단과 업무협약 MOU를 체결했다.

 

가나아트에서 200111월 말로 퇴사를 하고 가나아트 자료실 공간을 김달진미술연구소로 사용하다가 2005년 독립해서 상원미술관 근처 건물 2층 집으로 이사를 갔다. 2007년 경복궁 근처 통의동 국민대총동문회관 지하 60여평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이전하고 자료실을 개방했다. 자료실의 기능과 활성화를 위해서 박물관 등록을 권유 받았다. 당시 자가건물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건물소유가 제약이 있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관련 법규를 살펴 보았다. 등록박물관이 되려면 1종의 경우 소장품 100점 이상, 전시공간이 40평 이상, 2종의 경우 소장품 60점 이상, 전시공간 25평이 핵심이었다. 2종 박물관 등록을 목표로 잡고 박물관으로 등록할 것인가 미술관으로 등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는데, 우리는 미술 작품이 아닌 미술자료를 소장할 것이기에 박물관이 보다 적합한다는 판단아래 박물관 등록을 추진했다.

 

처음엔 명칭으로 한국미술자료박물관을 고려했으나 '한국'이라는 국가적 대표성을 자처하기에는 사립박물관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의견이 있어 2종 전문박물관인 김달진미술자료관으로 등록했다. 이 무렵 근현대디자인박물관 이런 명칭으로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전시공간과 자료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소 사무실을 별도의 공간으로 이전하였다. 박물관 개관전은 최열 학예실장이 <미술 정기간행물 1921-2008>을 기획했고 별책으로 '아름다운 시작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의 축사와 김승곤, 김영나, 김영순, 김창실, 김홍렬, 박래경, 서성록, 오광수, 오지철, 윤범모, 윤진섭, 이두식, 이석우, 정기웅, 정재숙, 정중헌, 하계훈 18명이 인연과 축하 글을 보내주어 책으로 꾸며졌다. 


한국미술정보센터


박물관 등록을 마쳤지만 1층은 식당이었고 지하층은 비가 오면 누수로 인해  공간 일부가 잠기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고 기폭제가 되어 후원회 발족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오광수 미술평론가 외 60여명을 발기인으로 해 20092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시청각실에서 후원회 창립총회를 열어 초대 후원회장으로 박래경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선임되었다. 2009년 정부청사 창성동 별관 옆으로 이전했다. 청와대 길목이어서 출입에 통제를 받아야하는 등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3층 전체를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뒤편 별관을 연구소로 운영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다가 ‘2010 예술전용공간 임차지원사업에 지원하여 선정되었다. 홍익대 부근의 창전동에 있는 옛 전원미술학원 별관 건물에 입주했고 150평의 공간이었다. 전세보증금 997백만원은 정부지원금 827백만 원, 나머지 17천만 원과 시설비는 자부담으로 충당하였다. 1층에는 박물관 전시장, 1열람실, 2층에는 2, 3열람실, 3층에는 학예실, 수장고로 구성되었다. 공적 지원을 받은 공간에 개인사업자인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사용할 수 없다는 사유로 분리되였고 옆 건물 별도 공간에 임대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이 임차지원사업이 2년간 기간이라 2012년 만료인데 조건부로 2년이 연장되었다. 이후 공간 확보를 위해 20133,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주선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주말데이트에서 만나 공간을 요청하였고 유휴공간으로 노원구에 있는 구 서울북부지방법원, 강남 서울의료원, 은평구 옛 질병관리본부, 평창동 가스충전소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협의도 있었으나 어려웠다. 그 외에도 안산 경기창작센터, 대구예술발전소,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등에서 공간제휴 이야기가 나왔지만 접근성의 문제, 아직은 문화가 서울 중심이라 자료 자체가 서울에서 활용되기를 원했다. 공간 연장을 위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국회의원 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등을 만나 사안을 알리고 부탁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정책과장, 시각예술디자인과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등이 내방하기도 했다. 공간문제가 많은 언론기관에서 보도되는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노력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김달진은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이슈화된 시대에서 문화융성을 부르짖으며 존재하던 2010년 국립예술자료원이 4년 만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합병되고 한국미술정보센터도 지원이 끝나는 데 대해 아쉬움이 컸다. 이외에도 서울시립미술관의 한 사이트로 운영하는 안도 검토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심각한 문제는 몇몇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지만 결국 대책이 없었고 20147월 도서 14,626권과 팸플릿 9,353부로 총 23,979()였다. 김달진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료를 기증한 데는 국립기관이 가지고 있는 자료개방 효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 작용하였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결국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마포구 창전동을 떠나, 201411월 종로구 홍지동에 대지 76, 건평 82.6평 건물을 매입하였다. 신축하기에는 자금과 입주시기의 문제로 어려운 점이 많아 광장건축의 김원 소장의 아이디어를 얻어 리모델링을 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자료 외에 채 보관하지 못한 자료는 여주에 있는 7평짜리 컨테이너와 자택에 쌓아놓았다가 정리했다. 2001년 가나화랑에서 시작한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박물관, 정보센터 등으로 영역을 구축하여 왔으나, 여전히 물리적인 공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재재관하며 열람서비스를 예약제로 전환했다. 이곳에 정착한지 11년 공간이 근처에 지하 40평 별도공간을 사용하지만 이곳도 부족하고 모든게 재원의 한계이다.

 

그동안 박물관은 많은 기획전시, 외부 아카이브 대여, 내방자 등 기관 아카이브를 축적하며 자료의 공유화에 노력했다. 자세한 내용은 daljinmuseum.com 과  매년 발행해오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식지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시행하는  2019년 한국박물관 미술관 우수활동상에서 한국 미술평론의 역사로 출판부문, 2025년은 e뮤지엄 활용 우수사례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립박물관협회 이사, 한국박물관협회 감사, 홍보위원회 위원장도 지냈고 2023년 박물관.미술관발전 유공 정부포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서울시 후원으로 아트아카이브 교육프로그램 라키비움 프로젝트2013년부터 2019년까지 운영하며 자료집 7권으로 정리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영문으로 Kimdaljin Art Archive and Museum으로 표기했는데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을 공유한 라키비움(Larchiveum)을 실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