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전시를 준비하면서, 외국의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보내오는 프로포절을 받아보면 작품의 수준이나 내용을 떠나 그 꼼꼼한 준비성에 저절로 칭찬을 하고 싶어진다. 한 작품이 설치되는 데 필요한 공간의 크기부터 각각의 장비가 들어가는 위치, 또 실제 필요한 장비의 사양이나 필요량, 그 외에도 부수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작은 부분 하나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말 그대로 여러 장으로 구성된 설계도를 내놓는 것이다. 물론 그 작품이 한 번 설치가 되었던 것이라면 실제 전시 광경도 빼놓지 않고 첨부자료로 내놓는다.
사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포트폴리오는 그저 완성된 작품의 모습을 차례로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것만으로도, 즉 작품의 이미지와 제목, 제작년도, 크기, 재료로 이어지는 작품의 캡션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렀고, 작가들은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으로도 작품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작품의 모습과 방향이 변한만큼, 작품을 위한 포트폴리오와 프로포절의 양식도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여러 색의 작은 조각을 그림처럼 벽면에 설치하는 토니 크랙의 작품들은 개별 조각마다 일련번호가 붙어 있고, 그것이 설치되는 위치를 도면으로 제작해두었다고 하니, 작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 알아서 설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매체로 여러 모습의 설치를 하는 작품일수록 보존의 측면에서라도 더더욱 설계도가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매뉴얼이 함께 보존될 때에만 작가가 사라진 이후에라도 남은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의 크기는 설치되는 공간에 따라 유동적일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실제로 필요한 재료들을 늘 손쉽게 구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남기는 것이 작가들 스스로에게나, 그것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사람들에게나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작가는 작품 설계도를, 전시기획자는 전시 설계도를 준비하는 일에 다같이 힘을 쏟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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