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기
#249
[문화산책]일상에 녹아든 문화
참 세상 별난 일도 다 있었다. ‘문화인증’이란 게 나돈 시대가 있었다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진짜다. 어엿한 역사다. 과거사 청산인지 뭔지의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지 어떨지 그건 모르지만 말이다. 그건 6·25 전란의 북새판에서였다. ‘문화인증’이란 것을 정부에서 발행했다. 불의의 남침으로 온전히 남은 국토라고는 서로는 남지(함안군)와 마산, 중간으로는 대구 그리고 동으로는 포항으로 잇는 선 안에 갇힌 손바닥만한 땅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다른 직종이며 분야는 다 제쳐두고 문화인을 지키자고 정부가 나섰다. 국토도 제대로 못 지킨 판에 문화인을 수호하자고 나선 것이 정말이지 여간 야릇한 게 아니다.
문화란 것의 비중이 국운만큼 컸던 것일까? 싶으면 생각은 갈피를 못 잡게 된다. 그러나 저러나 국운을 걸고 문화를 수호한 정부의 의지는 대견한 걸까? 어떨까? 한데 그 문화인증을 자랑스럽게 지니고 다닌 사람들은 다름 아니고, 예술인들이었다. 대중예술까지 포함해서 공연, 음악, 연극, 문학 등을 총망라한 영역의 인물들이었다. 오늘로서는 한편 비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좀 얼떨떨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예술이 문화의 대표주자였다는 것, 그래서 국가가 국운을 걸고는 지켜낼 만한 엄청난 비중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 이 정도는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사정은 달라졌다. 지금 당장의 문화라는 개념이 입고 있는 변화 그리고 갖추고 있는 범주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국가는 온 시민에게, 전체 국민에게 문화인증을 발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커다랗게 사진붙여서, 아니 아예 휴대전화에다 판박이로 찍어넣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누구나 문화인증을 가지게 되면 새삼 발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것은 ‘이 분은 사람임을 증명합니다’라고 하는 꼴이나 다를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는 ‘문화인증’은 그 옛날, 먼 옛날 일로 사라져갔다. 그래서 6·25 자체도 남의 나라 역사처럼 잊혀져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일성 조문가자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돌아도 문화인증은 기억 저쪽으로 지워졌다.
그야 어떻든 문화라는 개념과 내용, 그 갖가지 범주는 엄청 달라졌다. 불과 한 시대전 기준으로도 분명히 비문화적이라고 할 만큼, 문화는 급변했다. 이제 문화 범주는 다양해졌다. 퇴근 시간 이후의 번화가 같은 꼴이다. 백화점 격이 되고 슈퍼나 마트와 다를 게 없게 되었다. 문화의 자기변신은 후기 산업사회 그리고 대량소비사회의 최전선을 내달리고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한 시대전에 미술 전시회나 음악연주회에 가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옷치장이 문화고 화장이 문화고 하다못해 여성들 ‘하이힐’도 상품 아닌 ‘문화품’이다. 따라서 그것을 구매하는 것도 문화행위다. 진열된 것이 아니라 ‘전시’된 하이힐을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것은 상품 고르기가 아니라, ‘작품 완상(玩賞)’이고 감상(鑑賞)이 된다. 이 당장 인간이 누리고 쓰고 있는 것 가운데서 문화 아닌 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그것은 일상의 바닥에 내리 앉았다. ‘자고 먹고 일하고 쇼핑하고 즐기고 그리고 또 자고….’ 이것의 무한 계속, 이게 오늘날 생활의 꼴이다. 아니 생활 철학이다. 그리고 그 분란 속에 문화가 나부대고 있다. 하이힐을 들여다 보는 젊은 여성의 초롱초롱한 눈길이 진지하게 이를 말해 주고 있다.
- 세계일보 8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