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문화와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아름다움은 하나의 권력이다. 생각해 보자. 텔레비전 화면을 장악한 사람들은 대부분 용모가 출중하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막강한 오늘 이 체계를 대표하는 이들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매력적인 용모다. 상품도 기능만 뛰어나서는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기 어렵다. 아름다운 디자인, 매력적인 브랜딩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지성이 있는 사람보다는 지성미를 갖춘 사람이 환영을 받고 기능을 갖춘 상품보다는 기능미가 뛰어난 상품이 환영을 받는 시대이다.
아름다움이 갈수록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보다 유혹의 힘이 폭력의 힘을 앞서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 권력은 기본적으로 폭력의 속성을 띠었다. 권력자란 자신의 의지를 폭력으로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그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이 그의 의지에 순종했다. 폭력을 쓰든 쓰지 않든 그의 힘의 원천은 폭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권력자는 유혹을 그 힘의 밑천으로 삼는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폭력보다는 설득이 권력의 의지를 관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감성의 시대인 오늘 설득이란 곧 상대를 유혹해 ‘나를 사게 하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혹하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폭력의 행사는 갈수록 제도에 의해 그 방식과 범위가 제한받는 반면 유혹은 갖가지 제약과 제한을 쉽게 무력화시킨다. 유혹의 힘은 무엇보다 주체의 매력에서 나오고 매력은 아름다움을 그 기본 속성으로 한다. 영웅이 미인을 쟁취하는 시대가 어제였다면, 미인이 영웅을 뜻대로 부리는 시대가 오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권력은 갈수록 여성적인 속성을 띠어 간다 하겠다. 관철하는 힘보다 유혹하는 힘이 중시되는 시대이니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현실의 변화에 민감한 기업들은 이 힘의 변화에 그래도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편이다. 제품 디자인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한편 감성 마케팅이니, 문화 마케팅이니, 계량화하기 힘든 문화적 요소들을 경영에 도입하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을 팔아라”라며 고객의 잠재된 욕망을 깨워 유혹한다.
반면 가장 가시적인 권력인 정치판은 아직도 권력의 남성적 속성에 대한 편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이가 어떻든 국민을 설득하고 유혹하기보다는 국민을 볼모로 서로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려 할 때가 많다.
노동력이든 재능이든 나를 팔아야 하는 이 자본주의의 극성기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개발하고 유혹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은 필수적인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움과 유혹을 향한 이런 열정은 얄팍하고 퇴폐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치장했다면, 오늘날에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화장하고 치장한다. 왜 21세기를 문화 산업시대, 문화 전쟁시대라고 하는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자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2004. 8.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