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간의 기본권은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라고 말한다. 무자비한 봉건 권력으로부터 얻은 정치적 자유야말로 인간의 첫번째 기본권이 될 만하다. 그러나 정치적 인권은 이를 누릴 만큼의 물질적 조건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가난한 이에게 이 따위 자유는 빵 한개보다 못한 것이다. 경제적 자유권이 ‘사회적 인권’이란 이름으로 자리잡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확장시킨 것은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다. 가난과 부를 세습시키는 결정적 고리가 문화와 정보 향유의 격차라는 인식이 싹튼 것은 ‘작지만 큰’ 진보였다. 우수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도 문화 세례를 받지 못하면 열등한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8살 아이가 71만명인데 한살짜리는 49만명인 사회. <한겨레>가 참여연대와 공동 기획으로 본지에 연재중인 ‘성장의 기본틀을 바꾸자’ 8월20일치는 저출산 사회에 진입한 이 땅의 충격적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아이수(합계 출산율)가 2002년 현재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30개국 중 최저라는 통계 수치도 놀랍다. 불과 30년 만의 변화치고는 너무도 급격하다. 척박한 복지의 풍토 아래 아이를 낳아 제대로 기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적게 낳아 기르겠다’는 여성들의 비상한 ‘경제적 각오’가 반영된 결과다. 아직까지 출산과 보육, 교육, 부양에 대한 ‘사회적 보살핌’의 손길이 턱없이 멀리 느껴지는 강팍한 이 현실은 여성을 ‘출산 파업’의 막다른 골목으로, 노인과 장애인은 실업과 차별의 이중고로 내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이 보육에서 노인 봉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 복지 비용이 온통 가정에 떠맡겨지는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출산 감소와 경제활동 인구 축소, 그리고 다시 과다한 복지 부담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피할 수 없으며 장차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과연 사람이 살 만큼 기본권이 보장돼 있는가. 한 사회의 삶의 수준은 문화와 복지를 누리는 이런 기본권이 얼마나 보장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민주화를 이룩한 만큼 이제 문화와 복지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야 할 때다. 문화와 복지 기본권을 확실하게 보장해 가난의 대물림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진정한 사회적 연대로 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문화와 복지의 계층간 격차를 줄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뚜렷한 의지를 갖고 문화와 복지 정책에 공공 개념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들 부문은 이렇다할 공공정책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게 현실이었다. 사치스럽게 즐기기 위해 개인이 따로 부담해야 하는 몫이 아니라 정부 자신의 온당한 의무라는 올바른 인식이 시급하다.

정부가 일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자신감만으로 쉽게 그런 시대가 열리리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문화와 복지 기본권의 새 시대에 대한 예감을 갖지 못한 구태의연한 정책 발상으로는 안된다. 수출품 하나에까지 수요자의 까다로운 욕구를 만족시킬 높은 문화 콘텐츠를 담지 않으면 이제는 무역에서도 어림없는 일이 됐다. 나라의 새 활로를 찾기 위해서도 정부는 문화와 복지의 최대 수혜자가, 다름 아닌 국가 자신이라는 확실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프랑스 문화부의 홈 페이지는 자신들의 높은 문화적 자부심을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 설정을 통해 표방한다. “문화는 공공 서비스다. 최상의 조건에서 최대 다수가 문화 자산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 예산은 시장 경제 논리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문화는 자기 계발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최적의 조건이다.”(도서출판 살림 출간 최연구 지음 <르몽드>에서 인용)

- 한겨레신문 8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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