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세상] 완당과 소치 그리고 박이소


방학이 지나도 그 전에 계획했던 일을 마치지 못하기가 일쑤다. 개학이 되어서도 애를 태우다가 몇 주 지나서야 그것을 마무리짓곤 한다. 그런 후 한두 주일 긴장도 풀 겸 이전에 구입해둔 책을 읽는다. 이번에 읽은 것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와 그 제자이던 소치(小痴) 허련(許鍊)에 관한 책이었다.


그 가운데 김영호가 편역한 ‘소치실록’과 유홍준의 ‘완당평전’(3권)은 인상적이었다. 이 책들은 왜 이제야 읽게 되었던가 후회될 정도로 안타까움과 흐뭇함을 안겨 주었다. 안타까움은 ‘소치실록’의 경우 그것이 옛 문헌 중 직업화가가 남긴 유일한 자서전이라는, 우리의 빈약한 ‘기록의 전통’에서 왔고, 그 흐뭇함은 그 사이 발견된 100여 점의 소치 관련 자료들이 차례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왔다.


최근에 나온 ‘완당평전’은 선명하고 깔끔한 도판과 사진을 담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구성과 배치에 있어 편집의 수고와 정성이 돋보인다. 사실 이것은 완당의 변화무쌍한 예술과 드넓은 학문세계에 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방대한 자료에 대한 저자의 감식안과 균형 잡힌 시각이었다. 그것은 치밀하고 정확하며 풍성하고 섬세하다. 400여장에 이르는 도판과 사진에 대한 그의 자상한 설명만으로도 나는 내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행복을 참으로 오랜만에 누렸다. 놀랍고 고마운 역작이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은 ‘천리길 세걸음’-

완당과 소치의 삶이 보여주듯 시서화의 관계는 문사철(文史哲)의 그것처럼 우리 전통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옛 사람들의 읽기와 쓰기는 생활 가운데 체질화되어 있어 벼루와 먹이 어울리듯 서로 만난다. 가령 편지에 난을 그리고 낙관을 찍어 보내면 받는 사람은 이 그림을 품평하며 제화시(題畵詩)를 덧붙이거나 소장하게 된 경위를 밝힌다. 그래서 이 글과 그림, 시와 도장에는 속된 냄새가 아니라 그것을 아끼는 격조와 문기(文氣)가 서려 있다. 몸과 머리털이 깨끗해야 정신도 맑아지고 글과 그림도 제대로 되지 않는가. 책을 읽던 내내 옛 사람의 청고(淸高)하고 담아(淡雅)한 경지가 내 마음으로 번져오는 듯했다. 그러나 이런 풍족감 이상으로 회한도 옆에 쌓였다.


완당은 무려 10년 가까이 제주도 유배를 겪어야 했다. 그것도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후 그는 다시 북청으로 귀양살이를 가야 했다. 이유는 위패를 옮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한 고관이 자기의견을 말하였고, 완당은 이 선비와 친하였기 때문이다. ‘묵소거사(默笑居士)’는 선생의 한 호였다. 온갖 모함과 시기, 그리고 상소에 이은 유배와 귀양에서 나는 죄 없는 생애의 훼손과 역사의 망령됨을 새삼 확인한다. 소치는 소치대로 곤궁하였다. 몰락한 양반가문의 자손으로 왕의 부름을 받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교유하는 꿈같은 세월을 보냈지만 그의 삶은 대체로 불우하고 궁핍하였다. 그의 시와 그림이 보여주는 맑은 기상으로 우리는 이 음산한 세계를 이겨낼 수 있는가? 문득 지난 4월에 세상을 뜬 작가 박이소(朴異素)가 떠오른다.


나는 이 설치미술가를 잘 모른다. 그에 대해 몇 편의 글과 작품을 본 것이 전부지만, 그래서 이 글이 그를 욕되게 하지 않을까 염려부터 앞서지만 그를 떠올리는 마음은 무척 안타깝다.


작고한 예술가를 신비화해서도 안되지만 그가 누구도 탓함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삶의 불확정성과 자아의 정체성을, 미술의 존재이유를 밝혀보고자 했던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작가개성 날림문화로 질식-

그는 말의 바른 의미에서 ‘작가’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완당은 자신을 찾아온 소치에게 “자네는 화가의 삼매(三昧)에 있어 천리 길에 겨우 세 걸음을 옮겨 놓은 것과 같네”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시와 그림, 학문과 예술은 이렇듯 ‘천리 길에 세 걸음’을 옮기는 일과 같은지도 모른다. 그렇긴 해도 숨겨진 개성과 재능이 문화의 날림판에 의해, 시대의 상투적 시비에 의해 질식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가. 예술사의 불운을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예술을 배양하는 문화체계 안에서라도 작가의 요절은 피해야 하지 않는가. 예술가는 우리를 치유하는 자이므로.


-경향신문 200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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