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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문화산책]쇼핑과 문화적 체험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미국의 현대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 나오는 문구이다. 현대인은 쇼핑을 즐긴다. 심지어 물건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쇼핑을 하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현대인이 이렇듯 쇼핑을 즐기는 것은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의 획득이 주는 만족 때문만은 아니다. 쇼핑이 생활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문화활동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물건을 사도 사람들은 동네 가게나 슈퍼마켓보다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 전문매장을 선호한다. 원 스톱 쇼핑의 편리함이나 다양한 상품, 혹은 질 좋은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기능적 이점 하나 때문에 이런 곳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곳으로 나들이하는 것 자체가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삶의 질을 확보하는 한 방법이 된다.
사람은 오감을 갖고 있다. 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다. 물건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데 게으르다면 그것은 선택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물건을 파는 매장이 고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데 뒤떨어진다면 그 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쇼핑 현장이란 일종의 체험의 장이다.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감성적으로 체험하는 자기 만족의 자리이다. 일부 기업과 유통 매장이 쇼핑의 경험을 문화적, 감성적 체험의 기회로 향상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이런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뛰어난 상품이 주는 미적 만족감은 어설픈 미술 작품이 주는 미적 만족감보다 낫다. 거기에 다양한 문화적 수단과 예술적 연출이 동원되면 소비자는 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문화적 체험을 확대하고 감성적 만족을 늘리게 된다. 제품은 편익과 기능뿐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이미지와 판타지, 로맨틱한 ‘필링’을 선사하고, 쇼핑은 그것들을 체험하기 위한 이벤트와 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된다.
이 경우 소비자는 단순한 경제 행위의 주체 차원을 넘어 문화를 소비하는 관객 혹은 비평가가 된다. 이것이 선순환의 과정을 이루면 기업과 소비자는 특정한 문화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이루고 이 커뮤니티는 나름대로 시대의 문화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여기서 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렇듯 문화의 차원에서 경영과 마케팅을 펼쳐 나갈 때 기업의 상대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기업에서는 흔히 목표 고객을 타깃이라고 부른다. 타깃이란 총이나 활을 쏘기 위한 과녁이다. 전투의 냄새는 날지언정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기업의 목표는 더 이상 소비자라는 타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네트워크이다.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꼭 기업 이익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문화의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가치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창조나 창의력, 상상력, 꿈, ‘필링’ 같은 용어가 더 이상 문화동네만의 용어가 아니라 기업의 용어이기도 한 시대인 것이다.
- 세계일보 200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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