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에 20대 중반의 청년 조르쥬 쇠라는 파리 근교의 그랑자드 섬에서 시민들이 일요일 오후의 햇빛 아래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모습을 수많은 색점을 이용하여 대형 화면에 기록해놓았고, 서른 초반의 모네는 파리의 카푸친 거리 맞은편 건물의 상층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인상적으로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우리들의 생활 모습은 젊은 작가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세 곳의 전시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를 통해 이들이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평창동 키미 아트에서 열린 문성식의
두 번째 전시는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리고 있는 박세진의 전시다. 박세진 역시 서른 살이 되기 전인 작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이번 전시가 그녀의 첫 번째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개인전을 치르기도 전에 국제적 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행보는 주목을 받을 만하다. 박세진은 이번 전시를 통해 망토를 주요 모티브로 하는 회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화면에 도입하는 공간 역시 초현실적인 상상의 공간으로서 그것은 부분적으로 연극적 공간 설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벽면과 바닥이 명확하게 식별되지 않는 화면 속에는 테이블과 그림들, 그리고 정확하게 뭔지 알 수 없는 침대나 테이블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반듯하지 않게 널려있다. 그 속에서 망토를 두른 화면 속의 등장인물은 뒷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와의 직접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작가의 지인이 그녀의 작품에서 아름다움과 현실의 재현과 생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형요소가 주는 의미는 여전히 은폐와 차단, 그리고 명확한 소통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작가의 의도라고 해석된다. 어둡고 어수선한 전시장 벽면위에 박세진이 보여주는 세계 역시 현실보다는 비현실적 환상과 초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가는 대안공간 풀이 구기동으로 이전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초대전을 갖는 노재운의 전시다. <스위스의 검은황금>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의 전시를 통해 작가는 사이버 스페이스에 범람하는 이미지들 가운데에서 선택한 이미지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중층적 레이어들을 재해석하며 관람자들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한국사회에 대한 모순을 이야기해보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하는 작가의 의도가 좀 더 쉽게 관람자에게 전달되고 공감받기 위해서는 보다 정제된 조형어법과 이야기 전달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시공을 초월해서 선택된 이미지가 자신이 속한 현실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관람객들의 능동적 참여가 하루에 여남은 명밖에 찾아오지 않는 외진 전시장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 월간미술 200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