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 이야기를 잠간 해보자.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 컬렉터이며 광고업계의 거물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는 1980년대부터, 지금은 헤어진 그의 전부인 도리스와 함께 런던을 중심으로 한 미술대학원 졸업전시회를 순례하였다. 녹색 롤스로이스를 타고 나타나는 거물 컬렉터를 맞는 학생들의 마음은 마치 최종 심사를 앞둔 미인대회 참가자들 같았을 것이다. 사치의 선택은 곧 성공의 보증서 같은 것이었다.
이런 전시회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가지고 사치는 1980년대 중반에 런던 북부의 물감공장을 개조한 자신의 미술관을 꾸며놓고 시리즈로 전시를 기획했는데 이 때 그가 기획한 yBa(young British artists), yAa(young American artists), yGa(young German artists)등의 일련의 전시 타이틀들을 통해 나라별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최근의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을 주목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치가 수집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또 다른 동력은 비슷한 시기에 정부 차원에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맞아떨어진 점도 있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전통과 고풍스런 이미지가 새로운 시대의 교역이나 외교에서 신선한 활력을 주지 못하는 단점을 깨기 위하여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 젊은 국가의 이미지를 선전할 필요가 있었으며 미술 분야에서 때마침 불고 있는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러한 국가정책 방향과 맞아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다 일이 잘 되려니까 이러한 분위기를 맞춰줄 줄 아는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나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 등과 같은 처세술 감각이 있는 젊은 작가들이 시기적절하게 등장하여 대중적 자기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쳤고, 테이트 미술관의 통합 관장인 니컬라스 세라토경(Sir Nicholas Serato)이나 골드스미스 대학 미술학부장이었던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그리고 로열 아카데미의 큐레이터인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이라는 트로이카가 국내와 국외로 이들 젊은 작가들을 열심히 홍보해나간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yBa들의 약진 상황이다. 결국 영국의 1990년대 미술에서는 작가, 소장가, 평론가, 정부 등 미술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시기적절하게 갖추어져 폭발적인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사치식의 명칭을 이어가 본다면 yKa(young Korean artists)나 yCa(young Chinese artists), yJa(young Japanese artists) 등의 명칭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양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역이나 외교 등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의 생활 영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일반적인 환경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며, 미술시장의 국제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 가운데 사람들의 생활영역이 확장되는 현상은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의 확대와 통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고 시장의 확대는 그 시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 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방식을 동질화시켰으며 상품 가격의 단일화나 품질 균질화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미술분야에서도 시장의 확대에 적응하는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의 양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최근의 미술시장도 그 영역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어 새로운 상품개발 차원에서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필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 넓은 미술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작품을 발굴하다보니 상업화랑이나 경매시장에서는 젊은 작가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좀 더 적응력을 갖는 젊은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술시장의 경우에는 1970년대부터 화랑경영을 시작한 1세대 화랑주들의 세대교체가 이러한 흐름과 때를 같이 한 것도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어 준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 화랑의 대표주자격인 현대화랑을 비롯하여 국제화랑, 선화랑 등이 최근 2세 경영체제로 진입하였으며 근래에 새롭게 문을 연 화랑주나 고객층들 가운데 상당수가 40대 이하의 국제적 감각을 갖춘 젊은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젊은 작가들의 약진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유학파작가의 활동과 전시공간의 확대
여기에다 오늘날에는 인터넷 정보망에 의해 정보의 공유와 확산, 정보 취득과 소비에서 전세계적으로 시차를 느낄 수 없는 동시성이 이루어짐으로써 미술계에서의 작가활동도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젊은 작가들의 유학활동 등에 따라 국적이나 거주지역을 초월한 작품 활동이 이전보다 빈번하게 벌어지게 되었으며 이들의 활동을 반영하는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미술행사가 1990년대 들어 이전보다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활성화시켜주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전시공간의 확대도 미술계가 젊은 작가들뿐 아니라 국제적인 미술작품에 관심을 돌리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관한 예술의 전당 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로댕갤러리, 전북도립미술관, 대전과 부산의 시립미술관,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올림픽 미술관(soma)과 삼성 리움 등의 대형 공간은 일부 한정된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공간을 꾸려나갈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의 전시공간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작품들이 필요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국내, 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 해결책을 발견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이전에는 공무출장이 아닌 일반인들의 단순 해외여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였으며 극히 일부 작가들만이 해외유학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출국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지에서 머무는 생활을 선택했다. 따라서 해외미술에 대한 정보 유입은 아직까지 제한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무렵 국내 미술계에서 작가로서 성공하는 패러다임 자체도 지금과 달리 각종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국내의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는 것이 전형적인 성공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진출방식을 거부하고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활동을 선택하였으며 시장의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젊은 작가들의 성향은 때마침 형성된 대안공간이나 비엔날레 등의 공간에서 흡수되었으며, 국제적인 큐레이터나 평론가들이 비엔날레 행사를 통해 국내미술 현장에 관여함으로써 작가들의 활동영역을 국제적으로 확장시키는 한편 우리 미술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있어서 문화적 영향력의 판도를 바꿔놓게 되었다.
해외 유학을 통해 세계미술의 흐름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한 젊은 작가들이 국내의 미술대학 교육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점도 우리 미술계의 변화와 발전을 유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시야를 국제적으로 확장시키도록 자극하였다. 최근 몇몇 대학들에 의해 벌어지는 미술대학 학생들의 창작활동과 그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의 변화도 주목해볼 만하다.
1990년대의 대안공간 운동과 함께 새로 개관하는 미술관이 레지던스 공간을 갖추거나 아예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이 생겨난 것도 젊은 작가들의 약진을 돕는 결과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군주나 귀족과 같은 거물급 후원자를 잃고 난 예술가들은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로 집단거주식 창작의 방법을 선택해왔다. 19세기 후반의 몽마르트르의 예술가 집단 거주지나 몽파르나스의 벌집(La Ruche), 반 고흐가 꿈꾸었던 아를르에서의 화가들의 집단생활 등에서부터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산재해 있는 스튜디오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작가들의 집단거주와 창작은 작가들 상호간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효과를 일으켰으며 정서적으로 서로 의존하며 연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경기도 광주의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나 서울의 쌈지 스튜디오, 가나 아틀리에와 아라리오의 창작촌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창동 스튜디오와 고양 스튜디오 등을 통하여 젊은 작가들의 창작여건을 개선하고 작가들의 집중에 의한 창작에너지의 상승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화된 창작공간 이외에도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경기도 파주의 하제마을이나 비닐하우스 미술학교, 경기도 고양시 성석동이나 양평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들의 집중된 거주 형태 등도 정부의 지원이 조금만 투입된다면 작가들의 예술적 창작능력을 향상시키는 동력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홍콩이나 미국의 경매시장에서 몇몇 한국 작가들이 높은 가격에 작품을 낙찰시키는 성과를 올린다거나 몇몇 젊은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외국의 비엔날레 행사와 같은 국제 미술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몇몇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최근 국내에서는 마치 찰스 사치가 그랬던 것처럼 미술대학 졸업생들의 작품전시를 찾아다니는 컬렉터들이 나타났다는 신문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영국의 1990년대의 상황을 살펴본 것처럼 한국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약진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화랑의 노력뿐 아니라 건전한 담론을 풍부하게 생산해줄 이론가나 전시기획자들의 기여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폭넓은 미술 소비자 계층의 형성 움직임 등이 함께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개별적인 약진현상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튼튼한 담론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약진의 모습이 아니라 이들 작가들의 작품이 일시적인 유행에 의해 반짝 조명을 받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상품화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만든다.
문화예술에 관한 정책적 뒷받침이 든든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전업작가로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작가로서의 성숙미를 함양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갖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 때마침 일어난 상업적 유행의 물결에 휩쓸려 획일화된 스타일을 좆는 단명한 스타 작가로 전락한다거나 예술적 담론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극적인 주제에 몰두함으로써 반짝하는 동안의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방식으로 확산되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우리 미술계를 지배한다면 그것은 작가 본인들뿐 아니라 우리미술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의 사치의 경우에도 그가 영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형 자본을 동원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싸게 독점하여 비싸게 파는 투기꾼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컬렉션한 작품일지라도 상품성이 없으면 가차없이 시장에 던져버리는 냉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결국 컬렉터 사치가 불씨를 당기기는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영국 젊은 작가들의 약진은 그 밖의 요소들, 즉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이론가들의 건전한 비판과 담론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기획활동 등이 함께 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약진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불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성공적이며 장기적으로 이어져 가기 위해서는 상업화랑이나 경매회사가 주도하는 붐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담론이 풍성하고 세계미술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이론가들이 동참하여 국민 대다수의 관심을 바탕으로 펼쳐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이 위에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든든하게 주어지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작가나 이론가들뿐만 아니라 미술학교의 교육 당사자들, 미술 저널리스트, 문화외교관들, 미술관련 기술 종사자 등의 각 분야의 일치된 노력이 효과적으로 함께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