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개비, 아니 꽁초 한 꼬치가 문화라면 누가 믿을까? 피어오르는 연기는 순간으로 사라지고 재는 실바람 한 오리에도 날리면 그뿐인 걸 가지고 감히 문화라니? 말도 안 돼! 그렇게 나설 사람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여성의 뾰족구두가 문화의 주역이라면, 그것이 오늘날 문화이론의 주제로 설치고 있다고 하면 정신나간 소리로 치부될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한 문화다. 둘 다 매운 작은 고추들이다. 오늘은 담배만 다뤄 보자. 담배가 작게는 멋부리기나 거드름 피우기로 크게는 권위나 힘의 과시로서 사회적인 구실을 다해 왔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피우는 사람 자신의 신분이며 처지에 관련된 증명서 구실도 해온 것이다.

왕년의 이름난 영화 작품 중에서 그런 보기를 찾기는 누워서 떡먹기다. 저 유명한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입가에 어설프게 물려서는 달랑대던 담배, 그것은 실의에 빠져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 잉그리드 버그먼을 위압하고도 남는 상징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카사블랑카’보다 정확하게 13년 뒤에 나타난 1950년대의 가장 충격적인 문제작 중의 문제작, ‘이유 없는 반항’에서도 주인공 제임스 딘의 입가에 비슷하게 담배가 물려 있었다.

물린듯, 만듯 엉거주춤하게 입가에서 너덜대던 제임스 딘의 담배 역시 사내 구실하기로는 험프리 보가트의 것과 추호도 다를 바 없었다.

‘명화는 가도 또 명우는 가도 담배는 남는다!’

두 배우의 입가에 비스듬하게 물린 담배나 그 옛날 사랑채를 혼자서 독차지 하고 앉은, 우리들 할아버지의 흰 수염에 덮인 입가에 비뚜름하게 물려 있던 긴 장죽의 담뱃대나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고쳐서 말해 보자.

‘시대는 가도 명화는 사라져도 명우는 잊혀져도 담배는 남는다!’

이만큼 담배는 요즘 말로 하자면 기호고 텍스트고 또 담론이다. 당당한 문화다. 그 물살을 타고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담배 이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름 자체가 사랑채의 할아버지 입가에 기웃하게 물려 있던 담뱃대,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와 제임스 딘의 입가에서 달랑대던 담배와 정말이지 닮은 꼴이다. 그것도 담배의 전통이라면 전통이고 역사라면 역사다.

무슨, 어떤 담배 이름이냐고 물을 독자가 계실 것 같아서 털어놓고 말해 보자.

‘ONE’, ‘THIS’가 그 대표자 격이다.

‘ONE’은 누구나 알다시피, 여러 가지 뜻 가운데 ‘유일한 것’이란 엄청난 뜻을 갖고 있다. 정관사 ‘the’를 붙이고 대문자로 ‘One’이라 쓰면 무엄하게도 절대자 또는 신을 의미한다는 것쯤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THIS’도 만만치 않다. ‘다른 것 다 말고 바로 이것!’이란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this one’하고 붙여 쓰면 그 점이 특히 강조된다. 그러니 요컨대는 이들 두가지 이름이 합세해서는 ‘다른 것 아닌, 바로 내로라!’하고는 기세등등 우쭐대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본질을 의미하는 ‘ESSE’마저 가세하면, 적어도 상표 이름 중에서 이만큼 도도한 것은 없게 된다. 하지만 독초일수록 그 꽃빛이 곱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면 그건 무슨 편견 같은 걸까?



세계일보 2004.10.5 '문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