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위협으로 인해 사람은 물론 허다한 목숨 붙이들이 생존과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전시는 땅의 미래와 생명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전시는 한 일본의 꽃꽂이 연구회에서 주관한 것이었는데 단순한 꽃꽂이 전시가 아니었다.
가녀린 난초 잎을 배경으로 거대한 고베 대지진의 참사 현장을 담은 사진들과 영상물이 함께 설치된 일종의 설치미술전이었다. 처음 전시장을 들어갈 때만 해도 한·일 꽃꽂이 동호회에서 하는 친선전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분히 시적이면서도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가진 이 전시는 그 잔잔한 감동이 만만치 않았다. 어떤 유명작가의 전시 못지않은 여운과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고베 대지진 참사는 어느덧 10년이 흘러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겨져 있는데 수많은 대형 사진들과 영상물을 통해보니 그날의 참혹함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광주항쟁이 인재(人災)였다면 효고와 고베의 대지진은 천재(天災)인 셈이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내려앉으며 불길이 치솟는 아비규환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사실은 지극히 연약한 생명체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시가 인상적인 것은 재난과 폐허 속에서도 생명은 꽃핀다는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시 미학의 측면에서도 뛰어났던 것이다. 한 한국공예가가 빚은 옹기를 비롯한 소박한 생활도자기의 수수 덤덤한 맛 위에 마치 미니멀 아트를 보는 듯 청초하고 간결한 난잎과 꽃을 조화시킨 앙상블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일상성(日常性)의 미(美)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자칫 귀족풍이나 호사적 취향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본풍의 꽃꽂이를 화사한 화병이 아닌 한국의 투박한 옹기에 꽂거나 물에 띄워 냄으로써 묘한 조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아울러 참혹한 대지진의 흑백 톤 대형 사진들을 이어 붙여 벽에 족자처럼 설치함으로써 생명과 죽음,창조와 파괴의 극적 대비 효과를 살리고 있었다. 옹기 위에 함초롬히 피어난 한 송이 꽃이며 물위에 떠 있는 그 꽃잎들은 아름다움과 소멸의 미학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 인고 끝에 수줍게 봉오리를 펼쳐 활짝 피었다가 이윽고 시들어가는 꽃의 운명은 그대로 인생의 운명이었다.
이 덧없고 일시적인 듯 보이는 아름다움을 위해 힘들게 싹을 내고 물을 빨아올려 줄기와 잎을 무성하게 하는 것이 생명 순환의 이치일 것이다. 지진 참사의 현장 사진만으로 볼 때는 분명 효고와 고베는 다시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재앙 같은 지진과 검은 연기의 아수라장 속에서 또 다른 생명이 잉태되고 있었음을 이 전시는 보여주고 있었다. 생명이나 생태 문제에 대한 어떤 큰 목소리보다도 폐허 속에 핀 한 그루 난초의 울림은 더 절실하고 더 떨리는 것이었다.
지난 23일 일본 북서부 니기타 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일본이 다시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최근 지진이 빈번한 데다 여진의 가능성도 남아 있어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보도다. 이 전시가 보여주는 폐허 속의 생명력이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나의 좋은 전시는 현실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힘이 있다.
-국민일보2004.10.27 '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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