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강원도 대관령 아래에 사시는 어머니는 며칠 전 아들에게 올 가을의 단풍이 요 몇 년래 가장 곱게 물이 든 것 같다고 전화로 말씀하셨다. 그러잖아도 이번 가을, 우리나라 여러 곳을 자동차로 다녀왔다. 전라도도 다녀오고, 경상도도 다녀오고 강원도도 다녀왔다.

그냥 날이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아 그 아래 산과 들의 단풍빛이 좋은가 보다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해마다 비슷한 듯싶어도 들에 있는 곡식 잘 익히는 가을 날씨가 있고, 단풍 빛깔 곱게 하는 가을 날씨가 있다지 않은가.

어머니 말씀으로, 올해 가을은 들에 있는 곡식도 잘 익히고, 산에 있는 단풍도 곱게 물들이는 그런 날씨가 이어졌다고 하신다. 확실히 어머니는 같은 가을을 보내어도 나보다 날씨도 하늘도 깊이 보신다. 아마 그것은 어머니가 평생을 자연 속에 살아와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늘 대하는 책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어린 시절 내게 책읽기와 함께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을 가르쳐주신 분은 아버지이시다. 가을을 그냥 가을이라고 하지 않고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고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 어린 나이에도 참 재미있게 느껴졌다. 확실히, 우리집 외양간의 소를 보아도 그렇고, 또 마을 안쪽 산판장에서 나무를 실어 나르는 노새를 보아도 등판에 자르르 윤기가 돌았다.

그리고 ‘천고마비’와 함께 배운 말이 ‘등화가친(燈火可親)’이었다. 가을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밤에 등불을 가까이 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때 대관령 아래의 우리집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방마다 등잔불을 써서 그 말이 더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 마을에서 밤에 등잔불을 가까이 하는 일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가까이 할 때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무렵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의 산골 생활이 그랬다. 해가 져서 어둑할 때 저녁을 먹고,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또 어머니가 바느질을 할 때 등잔을 사용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텔레비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라디오조차 귀했던 시절, 해 떨어진 다음에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독서 말고는 없었다.

여러 자식을 키우다보니 아버지로서도 자식마다 제만큼 책을 사주지 못했다. 위로 형들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나와 동생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여러 자식이 함께 보라고 두꺼운 책 다섯 권으로 묶여 있는 삼국지 한 질과 또 머리가 굵어진 두 형을 위해 ‘한국문학전집’을 사오셨다.

‘삼국지’는 아버지도 다시 읽으셨고, 형도 읽었는데, 마땅히 읽을 만한 동화책이 없던 나 또한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그것을 읽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들처럼 나도 ‘한국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렵 가을밤의 독서를 잊을 수가 없다. 머리맡 가까이 등잔을 놓고, 가슴에 베개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보면 책갈피를 한 장 두 장 넘기는 아주 작은 바람결에도 등잔불이 흔들리고, 때로는 조금 세게 내쉬는 콧김에 불이 꺼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작은 등불 아래에서 그 등불 밑으로 다가가서 한국문학전집을 읽었고, 시내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온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지금도 가을이면 그 시절에 읽던 책 생각이 난다. 며칠 전에는, 그 시절에 읽고 크게 감동받았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짧은 소설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던 모파상과 체호프의 단편집을 옛날 기분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때처럼 머리맡에 등잔불을 밝히고 하는 독서는 아니지만, 깊어가는 가을밤 나와 함께 이렇게 다른 목적없이 오직 그것의 향기에만 취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아마 그 밤,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른 여가 선용 거리도 많겠지만, 책을 읽는 가을밤이야말로 왜 이렇게 짧은지 모르겠다고.

- 문화일보 11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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