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마거릿 드래블이 지난 8월과 10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발표한 소설 '붉은 왕비(The Red Queen)'의 배경은 한국이다. 그것도 조선시대다. 혜경궁 홍씨가 200년도 더 전에 남긴 회고록이 현대를 사는 영국인에게 우편으로 배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조선시대 왕궁 풍경과 혜경궁 홍씨를 둘러싼 드라마가 세세하게 그려진다. 현지 언론의 평도 좋았다.
영어권 작가가 우리 나라를 소재로 소설을 쓴 예는 무척 드물다. 자막 읽기가 귀찮아 외국 영화를 기피하던 그들이 다른 나라 문화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온다. 왜? 그들에게는 이제 지구촌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꼭 알아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와 윤호진의 뮤지컬 '명성황후',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 '난타'가 미국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일본.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우리 문화가 사랑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류라고 혹시라도 마음 한편에 문화적 우월감이라도 가지면 곤란하다. 자기 것 아닌 남의 것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글로벌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의무'다.
잡지 등을 통해 어느 글로벌 은행의 광고 중에 이런 것을 봤을지 모르겠다. 메뚜기를 그려 놓고 '미국에서는 곤충이지만, 태국 북부 지방에서는 흘륭한 음식'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를. 이렇듯 지구촌은 개인과 단체, 더 나아가 국가 간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어권에서는 아예 '문화지능(cultural intelligence)'이란 표현이 정착돼가고 있다. 감성지능보다 넓은 개념이다.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의 저자 다니엘 골만에 따르면 감성지능은 한마디로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늦출 줄 알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줄 아는 여유'다. 그래서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이 나와 다른 점을 잘 파악한다. 문화지능이 높은 사람은 한 술 더 뜬다. 어떤 개인이나 그룹의 행동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특징과 그 그룹에만 국한된 특징을 구별해낼 줄 안다. 그리고 상대방의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판단되면 겉으로라도 그것을 따르려고 할 줄 알아야 문화지능이 높은 사람이다.
영어권에서는 '문화지능'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3종 출간돼 널리 읽히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초강국으로 자리를 굳힌 미국 시민들이 타인의 문화로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경제적 이익이 깔려 있다.
흥미로운 점 한 가지. '문화지능' 중 한 권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얼리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동료 중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문화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고,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주장한다.
우리를 들여다보자. 온통 갈라서서 대립하고, 싸우고, 경박한 말을 주고 받는다. 짜증 난다. 외국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또 어떤가. 아직도 지도자들은 어려운 우리 경제를 '특별한 이유로 겪는 특별한 불경기'로 설명한다. 한국과 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우리 모두 놀라지 않았던가. 한국과 베트남은 너무나 특별한 관계인데도 한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 총리가 한 말은 "그동안 양국 관계는 정확한 방향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룩해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적이고, 전통적이고, 주체적이고, 특별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지구촌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됐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분열이 인쇄매체를 멀리하는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가을이 깊어서인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2004.11.10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
다시읽기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