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한국영화 균형감각 찾을 때다
지금 뉴욕에선 대대적인 한국영화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링컨센터가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1956년부터 현재까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한 한국영화 40편을 상영한다. 미국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진다는 이 행사에서 다시 한번 한국영화의 국제적인 위치가 격세지감으로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굵직한 상을 받은 것과 비례해 유럽지역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북미지역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상승하는 중이다.
미국에서 교편생활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내년 하버드를 비롯한 상당수의 대학에서 기획하고 있는 영화제가 한국영화를 주요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느라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외국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들은 대신 외국영화의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한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 따라서 한국영화의 유행이 분다고 해도 대개는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 매우 한정된 범위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미국 시장에서 외국영화로는 꽤 큰 규모의 흥행을 거둔 데 이어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미국 내 젊은 영화광들의 관심을 끌면서 촉발된 한국영화에 대한 이 관심은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다.
이는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소개됐고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거둔 관심과 비할 바는 아니다. 무엇이든 글로벌 표준을 만든다고 자임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보편적인 호소력을 담았다고 자부해 봐야 그쪽 시장에선 큰 반향을 얻지 못한다. 대신, 그쪽에서 전혀 만들 수 없는 개성을 지닌 영화라야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영화계가 처한 고민도 거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수의 독창적인 작가영화와 대중영화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서 국내외 시장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관한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홍콩영화의 경우에는 비주류 시장의 컬트영화 품목으로 인기를 끌면서 오우삼과 성룡 등의 할리우드 진출로 이어졌다. ‘와호장룡’과 ‘영웅’의 미국 시장 흥행 성공도 실은 수 십년 동안 비주류 시장에서 홍콩영화가 축적한 인지도 덕을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작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영화와 넌센스 코미디 감각으로 세게 포장한 영화로 지나치게 양분돼 있는 한국영화계의 올해 농사는 근심거리다. 얼마 전 국내에서 치러지는 모 영화제의 예심에 참여한 덕분에 대부분 봤던 영화를 두 번 봐야 하는 영광된 체험을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 정신적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느꼈다.
기획 영화는 개봉 당시의 최면상태가 사라지고 나면 앙상한 상흔만 남는 게 대부분이다. 유감스럽게도 올해 한국의 주류영화계는 그다지 진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틈새에서 소수의 작가영화는 해외에서의 평판과는 별개로 국내 시장에선 너무 왜소하다. 상업영화계는 좀 더 모험적으로 달려들고 작가영화는 좀 더 대중적인 평판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마냥 화려해 보이는 한국영화의 호시절, 이 연말을 맞으며 다시 한번 균형감각을 생각해 본다.
- 세계일보 1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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