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열려있는 우리 시대의 천재 백남준이 이제 그만 한국에 돌아가, 한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묻히고 싶단다. 그의 나이 72세. 1996년 쓰러져 좌반신 마비의 몸으로도 작품활동을 계속해 왔고, 그런 그를 세계는 경탄의 눈으로 바라봤다. 일본 여자와 결혼하고, 가장 부지런히 국경을 지웠던 그가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예술의 경계를 지우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나이는 지우지 못해서인가. 바람처럼 이동하며 의식의 지평을 넓혀왔고, 전 세계를 무대 삼아 예술혼을 불태웠던 거장이기에 그의 망향가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의 탐험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경·예술 경계넘으며 활동

지난 세기말, 백남준은 백악관에 초대를 받고 당시 대통령이던 클린턴과 악수를 나눌 때 그의 바지가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큰일 날 일이지만 백남준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았고 그마저 행위예술로 비쳐졌다. 그는 삶과 예술의 경계까지 지웠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혼 속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이토록 자유로운가. 그것은 혹시 잡종의식이 아닐까?

그가 열었던 새로운 예술 ‘비디오 아트’의 세계는 너무 깊고 넓어 그 특징을 적확하게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복합 매체’와 ‘비(非)결정성’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복합 매체는 순수성 대신 혼성 또는 잡종성을 표방한다. 다수 매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매체와 매체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형식이다. 비결정성은 비정형적이고 비선(非線)적이다. ‘우연’까지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그대로 열려 있음이다.

지난날 잡종이라 함은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잡종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이 창조이며 무엇이 새것인가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이 순종의식이라 하면 잡종의식은 이것과 저것의 장단점을 살펴 제3의 길을 찾는다. 순종이 이원적이라면 잡종은 다원적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지구촌에 이종간의 접합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변종들이 생겨나고 그 변종은 또다른 변종을 잉태한다. 그 맨 앞에 백남준이 서 있었던 것이다. 잡종은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는다. 인터넷도 컴퓨터와 통신의 변종교배에서 탄생했다. 음악가, 미술가, 과학자이며 철학자임에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우리의 천재 백남준은 미래사회를 이렇게 예측한다.

영원한 중심도 변방도 없어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 것인가? 가장 강력한 통신력은 PSI, 즉 심령력이다. 자국의 목표를 위해 이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은 석탄의 힘을 이용한 최초의 국가였고, 미국은 원자력의 경우에 그러했다) 누가 22세기의 최강국이 될 것인가? 분명한 대답은 불가리아이다. 불가리아는 인구 중 집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그 PSI 지수 때문에 집시들은 지난 세기 독일 루르지방의 석탄이나 오늘날 우라늄이 갖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이다.”

백남준은 그의 작품을 통해 소통을 희원했다. 미래의 세계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며 그것은 미래사회의 강력한 무기이고, 이는 문명과 구속과 형식을 거부하는 집시에 건강하게 남아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잡종의식도 세월이 흘러 순종이 되어가는가. 그도 이제 비디오 아트의 주류이며 그의 업적은 화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영원한 중심도, 변방도 없는 셈이다. 백남준은 지금 TV 속에 자신이 돌아갈 고향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 경향신문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