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대문 지붕에 웬 광고물?
며칠 전 서울역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남대문 지붕 위로 커다랗고 휘영청 밝은 네모난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다름 아닌 어느 고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옥외광고물이었다. 마침 어둑어둑해지고 있어 노란색 배경의 잘 디자인된 붉은색 알파벳은 더욱 선명했다. 순간 기막히게 광고 효과가 좋은 광고물이라고 생각했다. 국보 1호인 남대문, 그 부드럽고 당당한 지붕선을 동반한 광고물인 만큼 광고 자체로는 더없이 훌륭했다. 그러나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남대문 주변의 광고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 광고물이 유난히 튄 까닭이다.
초고층 건물군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현대에는 세계 어느 도시든 이미지가 비슷비슷하다. 뉴욕이며 도쿄, 서울의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성 있는 도시의 이미지란 전통적인 것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때 전통적인 건축물과 주변의 조화 또는 현대적 건축물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건축물과 어우러진 옥외광고물은 그 도시의 문화와 경제활동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전통성 있는 장소로 서슴없이 인사동을 이야기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남대문시장 또는 동대문시장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지난날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했던 까닭에 경제적 효과만을 추구하고 도시공간을 사회적 자본재로만 인식하는 왜곡된 모델을 만들어 냈다. 물질적 발전만을 중시할 뿐 삶의 질이나 풍요로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편린이 옥외광고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옥외광고는 개인 또는 단체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려는 정보를 옥외공간에 설치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도로 발달과 레저 붐으로 실외 활동이 많아지면서 옥외광고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옥외광고물은 도시의 이미지 조성에 기여하며 특정 건물을 아름답게 꾸며주기도 하고, 장기적이며 반복적인 광고 효과와 지역 특성과 도시의 개성을 살리기도 한다. 시민에게 찾고자 하는 기업 및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도시환경에서 옥외광고물의 역할은 도시 공간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건물 표면을 이루며 이곳에 표시된 이미지로 도시의 거리에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울의 역사적 표지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남대문은 하늘 높이 솟은 주위의 현대식 고층 건물들로 인해 왜소하고 초라해 보인다. 남대문 지붕 위로 떠오른 알파벳으로 된 옥외광고는 그래서 더욱 기세당당하다. 광고물 효과는 좋을지 몰라도 서울의 이미지는 엄청나게 손상되고 있다. 전통과 초고층 건물로 상징되는 대도시의 모습이 어우러져 서울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자리인 만큼 이 옥외광고물은 광고물로서의 효과 이전에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이미지 형성을 더욱 고려했어야만 했다.
더욱이 이것이 한글도 아니고 알파벳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글로벌화된 현 시점에서 한국적인 것, 한글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 시점이야말로 도쿄와도, 뉴욕과도 다른 서울의 모습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론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은 원한다. 모든 건물을 한옥으로 지을 수 없는 만큼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우리의 한글로 세계 어느 도시와도 다른 서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코카콜라나 맥도널드처럼 이미 익숙한 이미지의 한글 표시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도 색다른 표기방법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게 될 것이다. 낯선 문화를 만끽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안내 표지판도 아닌 수많은 옥외광고물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알파벳 문자만을 발견한다면 한국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지 않을까.
- 중앙일보 1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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