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자각과 함께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기업발전을 문화예술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뜻하는 ‘메세나 제도’는 오늘날 많은 국가와 기업들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협조를 매우 활발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4년에 기업들과 정부의 지원으로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설립되었다.

-대기업 지원 서양예술 편중-

한국메세나협의회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도에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지원한 금액이 그 전해보다 13% 정도 늘었다고 한다. 157개 기업이 2,711건의 사업에 총 1천7백10억원을 지원했는데 그 중 현대중공업이 1백29억원으로 1위, 대한생명이 2위, SK텔레콤, 포스코, 한국수자원공사 순이라고 한다. 또한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문화재단의 지원금이 총 1천7백10억원 중 9백84억원이며 삼성문화재단, LG연암문화재단, 금호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가천문화재단 순이라고 한다.

그 전 해인 2003년에 297개 기업이 1천5백17억원을 지원한 기록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문화예술지원 형태가 대부분 대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금액은 늘었으나 참여 기업 수는 대폭 줄어든 기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에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참여 기업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것과, 아직도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관심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전체 지원액의 50% 이상이 오페라나 발레, 뮤지컬 같은 서양예술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에서 우리 민족예술, 전통예술, 창작예술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불행했던 근·현대사의 질곡을 헤치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번영과 영광 뒤에는 그에 상응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중 하나가 급격한 성장의 뒤안길에서 서구 일변도의 가치 기준에 의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어 폄훼된 민족전통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의 다양성, 문화산업의 종자(씨앗)로서의 중요성을 떠나 생각하더라도 민족문화, 전통예술은 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혼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예술 위기 인식전환을-

그동안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 몰이해와 무관심을 견뎌온 전통예술은 늦게나마 비로소 세계로부터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종묘제례악과 판소리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전의 차원을 강조한 것으로 진정한 재창조의 길과는 거리가 있다. 전통예술의 위기, 전통을 재창조한 창작공연들의 위기, 순수예술과 기초예술 전반의 위기는 현재도 역시 유효한 우리 예술에 대한 무시와 경제제일주의의 사회적 가치체계가 그 근본 원인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기업들과 문화예술분야가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업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수적이다. 그것도 우리 전통문화예술과 기초예술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유명 서양예술과 동등한 정도의 가치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상상도 못할 이익을 거둘 수 있는 확실한 투자의 길이다.

출처-경향신문 2005. 7.9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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