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관계 일을 하다보니, 문화 교류의 문제들을 생각하지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인류학에서 쓰던 말로 ‘문화의 양식’이란 말이 있지만, 이것은 한 사회 집단의 행동과 사고방식에는 형식이 있고, 이것이 하나의 통일된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나타낸 말이다.
문화를 이렇게 이해하면, 단편적인 의미에서의 문화 교류는 쉽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와 사회 사이에 일어나는 상품의 교역도 문화 교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오고 가는 상품은 어떤 문화적인 연상을 일으키고 그것은 급기야 다른 사회의 문화 양식에 또는 그 사회가 스스로의 질서를 파악하는 원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화’로 쉽게 교류가능-
상품 교역은 일단 심각한 의미에서의 문화 교류보다도 가볍게 생각될 수 있는 일이다. 상품은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문화의 주체적 질서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다가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회는 이미 하나의 질서--상품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어서 상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용의를 갖추고 있다.
문화가 외국에 진출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우선 상품의 관점에서 생각된다. 영화나 음악이나 미술은 물론, 정보라는 품목을 공급하는 학문까지도 상품화될 수 있을 때, 그것은 쉽게 교류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독일에서 펼치는 문화 행사들이 한류에 비교되고 이러한 관점에서 말하여지는 것은 시대 흐름의 한 양상을 나타낸다.
화이트헤드는 희랍철학이 유럽에 확산되는 데 교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가를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문화의 상품화를 말한 것은 아니지만, 문화와 상품의 교류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 관계의 의미를 정확히 생각해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문화나 예술이 사회 체제에 얽혀 있는 것은 예로부터의 현상이지만, 지금처럼 그것이 상품 유통의 경로에 완전히 편입된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문화와 예술이 상업적 목적에 봉사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상업의 언어는 오늘날 공적인 담론의 언어다. 사람들은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은 상업의 관점에서 또는--상업적 목적은 곧 자기 확대와 권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명성과 힘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와 예술 자체가 상업적 세계가 만들어내는 정보와 상징과 기호의 그물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예술은 ‘상업기호’의 노예-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되풀이하는 주제는, 오늘에 존재하는 것은 가상현실뿐이며, 그 밖의 현실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가상현실은 기호와 상징의 소산이다. 그런데 그 중의 많은 것은 상업과 정치적 힘이 만들어낸다. 광고와 선전이야말로 오늘날 기호 세계의 전형적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심리조종의 습관은 가상세계를 움직이는 숨은 힘이 되어 있다. 가상의 세계는 단순한 허구의 창조물이 아니라 조종과 권력의 세계이다. 오늘의 문화와 예술의 과제는 이 현실을 딛고서면서 어떻게 그것을 넘어가는 현실을 가리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현실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면서, 그곳의 현대미술관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새로 구입한 작품들을 위한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설치미술이거나 설치미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주종이 되는 최근의 작품들이었다. 설치미술은 출구 없는 현대 사회의 소비와 소통의 단일 구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예술이다. 그 매체는 붓이나 물감처럼 다른 어떤 것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료는 오늘의 일상적 도구와 배경에서 취해진다. 자료의 성격이 벌써 예술의 자율성과 항구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치미술에서 예술은 또 하나의 초월적 차원을 구성하지 아니한다. 다만 작가는 그의 독자적인 관점과 관념의 힘으로 일상성을 예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대체로는 오늘의 세계 기호의 회로를 벗어나지는 아니 하는 듯하다.
설치 미술의 1차원적 즉물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더글러스 고든(1966년 생)의 ‘죽은 체 하기’라는 코끼리 영상물이었다. 고든은 코끼리를 미술관에 끌고 와서 걷는 동작을 반복하게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클로즈업으로 찍은 동영상 속에서 우리는 코끼리 육체의 작은 움직임들을 직감한다. 코끼리의 다리 그리고 다른 몸 부분에서의 작은 주름살과 근육의 들먹임은 그 육체로서의 성격을 실감하게 하고 미술관의 흰 벽과 마룻바닥에서 그 육체가 얼마나 소외적 존재인가를 느끼게 한다. 코끼리 몸은 흙바닥이나 풀밭 위 또는 더 원초적인 삶의 공간에 있어야 할 것이었다.
또 하나의 감명 깊은 작품은 독일의 한스페터 펠드만(1941년 생)의 ‘죽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이었다. 이것은 1967년부터 1993년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된 사람들--테러와 폭력, 특히 ‘적군파(RAF)’와 관련된 사람들의 죽음을 취재한 여러 사람의 사진 90장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사진들의 느낌은 보는 사람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특히 독일의 적군파에 관련된 사건들은 대체로 참혹함과 공허함이 섞인 슬픔을 느끼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동기에는 이상주의적 요소가 있었겠지만, 그 결과는 아무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명피해와 파괴행위였다. 그들이 죽인 사람 외에 경찰이나 군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적군파의 지도자들이었던 바더와 마인호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다른 예술작품과는 달리 그 자체를 넘어서 객관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매체이다. 동시에 그것은 사건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지칭할 수 있다. 이 사진들의 모음에 견해가 있다면, 그것에 해당하는 것은 바더·마인호프파의 정치 이데올로기 계획이다. 작가 펠드만은 우리에게 그것을 상기하게 하고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 인간현실의 비참함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대의 정치적 언술 뒤의 인간 현실을 넘겨보게 된다.
-소비회로 벗어난 문화 기대-
설치 미술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의 인위적인 세계와 그 기호 작용의 일부를 이룬다. 그것은 작가 ‘컨셉트’의 기호이면서 오늘에 허용되는 견해와 세계를 재확인한다. 그러나 뛰어난 작가는 그것을 넘어서 다른 사실을 지칭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현대미술관에는 앤디 워홀의 캠벨숲 깡통의 그림이나 로이 릭턴스타인의 통속만화의 재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소비문화나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불과한가? 어쩌면 그것들도 당대의 기호 속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풍자이며 탈출의 암시인지 모른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서 한국이 보여주는 문화는 다분히 오늘의 소비문화 유통과 소통의 경로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든 싫든 그것은 오늘의 유일 기호 체계가 가하는 제약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것이 언어를 잃어버린 큰 현실에로의 해방적 기능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문화하면 문화 마케팅이 반드시 말하여져야 하는 우리문화의 현시점에서 그것이 가능할는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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