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신문사 문화부로 배달되는 신간은 대략 70~80권이다. 이같은 신간의 종수는 IMF 전인 7~8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책의 내용에는 큰 변화가 보인다.
두드러진 현상은 경제·경영서, 처세·자기계발서와 같은 실용서가 늘어난 반면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퇴조했다는 점이다. 경영·처세서의 증가는 IMF 이후 어려워진 경제사정과 맞물린다. ‘아침형 인간’과 같은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관련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반면 80~90년대 출판시장을 이끌었던 인문사회 서적은 오랜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다.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인문서는 2,000부 팔리면 성공”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공들여 만든 책들 가운데 1,000부도 채 팔리지 않은 게 부지기수이고, 연중 1만부 이상 팔린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다보니 개점휴업 상태이거나 실용서나 경영·처세서 분야로 방향을 트는 출판사가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출판사 2005’라는 책자를 낸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는 “회원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닿지 않는 출판사들도 있었다”면서 “휴업중인 출판사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20여년간 400여종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했던 ㄱ출판사의 최근 목록에서는 철학과 같은 인문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금융지식이 돈이다’와 같은 경제·경영분야의 실용서로 채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문출판사인 ㄷ사도 최근 ‘환경’ 책으로 주력 분야를 바꿨으며, ㅅ사도 실용서 출판에 힘을 쏟고 있다.
인문사회 서적의 불황은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8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 성업했던 ‘논장’ ‘오늘의 책’ ‘서강인’과 같은 전문서점은 이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서울대 앞의 ‘그날이 오면’만이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대형서점에서도 인문서적의 ‘사막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 ㅇ문고는 한때 출입구 쪽에 넓게 자리한 ‘인문’ 코너를 이제 멀리 구석으로 옮긴 상태다.
고전하는 인문서적 출판시장을 되살릴 방안을 없는가. 최근 밀리언셀러에 오른 ‘다빈치 코드’는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다빈치 코드’는 역사적 상상력인 팩트(fact)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fiction)이 하나로 융합된 ‘팩션’(faction)이다. 예수의 결혼설을 둘러싼 비밀과 미스터리를 파헤친 이 소설은 예술, 역사, 종교를 풍부하게 아우르고 있어 독자들에게 인문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팩션을 ‘소프트한 인문서’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아무튼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에게 ‘다빈치 코드의 진실’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등과 같은 비소설들이 함께 읽히게 하는 부수적 효과를 낳고 있다.
다빈치 코드의 호응은 아직은 독자들이 인문적 자장(磁場) 안에 있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일부 출판사가 시도하는 고전 번역 및 재해석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도서출판 그린비는 지난해부터 ‘자본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고전을 재해석한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내고 있다. 또 도서출판 보리는 지난달 ‘겨레고전문학선집’ 시리즈 가운데 1차로 ‘열하일기’와 연암집 선집 ‘나는 껄껄선생이라오’를 펴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같은 출판사의 작업이 당장 인문 출판시장을 일으켜 세우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고전 출판이 계속되고 독자가 늘어날 때 ‘다빈치 코드’와 같은 밀리언셀러가 나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지 않는가.
경향신문 2004.12.11 [정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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