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반 동안 참가한 아이오와 국제문예창작 프로그램을 마친 뒤 각자 원하는 도시로 여행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주저없이 뉴욕을 선택했다. 수많은 컬렉션으로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구겐하임 뮤지엄 외에도 뉴욕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과 작가 폴 오스터와 줌파 라히리가 사는 곳이었다.
내 친구, 동생의 친구 등 그동안 뉴욕에서 살던 사람들이 내가 그곳으로 떠나기 얼마 전에 우연처럼 모두 우리나라로 되돌아와 버려 나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대신 그들에게서 한결같이 “다른 건 못 봐도 ‘모마(MOMA)’는 보고 와야 한다”는 이상한 신신당부만 들었다.
그뿐 아니다. 내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거리 곳곳에서 본 미술관 재개관에 관한 광고판, 플래카드, 그리고 신문 기사나 칼럼 같은 것들이 거기는 꼭 가봐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을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마’가 ‘뉴욕현대미술관’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됐다. 모마의 재개관 일은 내가 뉴욕을 떠나기로 한 날의 이틀 전, 토요일이었다. 그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날도 궂은 데다 시카고에서부터 뉴욕까지, 유명하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은 다 돌아본 터라 특별히 모마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도 개관일이라니 어디 한번 가볼까, 뭐 그런 심드렁한 심사로 중국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미술관까지 걸어갔다.
-미술관 개관행사 축제 방불-
비가 오는 주말의 5번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부쩍 더 붐비고 있었다. 모마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오전 6시부터였다고 한다. 내가 간 시간은 오후 3시였고 입장을 하기 위해서만 나는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폐관 시간이 여느 때처럼 오후 6시일 거라고 잘못 안 나는 우선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해놓은 4층과 5층을 허겁지겁 돌았다. 폐관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관람객들 숫자가 눈덩이처럼 점점 더 불어났다. 직원을 붙들고 물어보니 그날은 특별한 날이라 밤 10시에 폐관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성장을 하고 온 노인들, 관광객들, 뉴요커들 그리고 걸인들과 장애인들. 축제가 따로 없었다. 그림보다 나를 더 압도한 건 어쩌면 그림을 보겠다고 몰려든 그 수없이 많은 관람객들이 아니었을까.
1929년 설립된 뉴욕 현대미술관은 10만 점이 넘는 거대한 현대 미술 작품들을 모아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창립 75주년을 맞아 4년 전부터 1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경비를 들여 증축공사를 시작했다. 비 오는 맨해튼, 그것도 개관 첫날 그 ‘도시 속의 미술관’에서 내가 본 마티스의 ‘댄스’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세잔·루소·모네 그림들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과 충격에 대해서는 어떤 말로도 다 설명할 길이 없다.
이틀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새 우리나라에도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미술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예약을 해야만 한다고 하기에 함께 가기로 한 동생에게 맡겼다. 며칠 후 나는 동생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가야 하는데,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장담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그날 나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 거기 가기 힘들다. 동생에게 다시 예약을 부탁하니 전화 또한 하루에 딱 두 시간밖에 받지를 않아서 직장에 다니는 동생도 그 시간에만 맞춰 예약전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국땅선 관람에도 ‘어려움’-
사립 미술관인 데다 명작과 1대 1로 만나게 해준다는 발상에는 달리 할 말 없으나 나는 그렇게까지 욕심을 내서, 그렇게까지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는 영영 거기 가보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개관했다는데 가기가 쉽지 않은 건 어쩌면 전적으로 게으른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언제고 거기 가서 그림들을 좀 보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1만7천여 평 넓이의 미술관을 카메라를 든 채 1층부터 6층까지,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1분도 쉬지 않고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그림들을 보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나의 첫 뉴욕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그런 날이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뉴욕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모마에 갔다 왔다.
- 경향신문 20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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