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40대 작가들에게 보였던 열기는 차즘 식어가고 있다. 이제 미술시장의 중심은 20대 후반의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젊은 작가는 무엇을 그리는가? 이러한 질문은 곧 차세대를 이끌어갈 작가들의 향방을 묻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이러한 극심한 쏠림 현상은 최근 한 신문사가 공동 기획한 ‘구서울역사의 아시아프’ 전시를 통해서도 예외 없이 드러냈다.

이 전시에서 보여준 최근 젊은 작가들의 경향은 하나는 사진처럼 그려내는 하이퍼리얼리즘과 대중적이 아이콘을 화면 속에 끌어들이는 키치와 팝아트 두 종류다. 현대미술에서 특정한 경향 자체가 문제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고뇌의 흔적 없이 요즘 이런 그림들이 잘 팔린다더라 하면 젊은 작가들이 편집증처럼 거기에 매달린다는 사실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돈맛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쏠림은 미술계의 한 장르를 극심하게 위축시키기도 한다. 하이퍼나 시각적 효과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먹 중심의 동양화, 즉 한국화는 애시당초 설 자리가 없다. 젊은 작가들에겐 잘 팔리지 않는 그림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더 이상 그릴 이유가 없어지고, 더 큰 문제는 매력조차 상실해 간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몇 년 전 미술시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일어난다.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친 선생의 그림 값이 제자의 그림 값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소수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대학 졸업전이나 석사학위청구전에서 작가의 작품을 사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현대미술 시장을 닮아 가고 있다. 20, 30대에 두꺼운 도록을 가지지 못하면 작가 행세를 못하는 중국. 문제는 소신이나 철학 없이 몰려드는 대중적인 유행이 문제이다.

작품은 유행이 아니고 작가의 철학과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작가의 특별한 이념이나 철학 없이 거의 사진을 이용한 간편한 방법으로 작품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심각성은 이들 대부분은 화면의 시각적 효과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색채의 현란함과 팝아트의 전형적인 속성인 이미지의 짜깁기나 클로즈업 등이다.

이러한 집중현상이 모든 작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자기 언어를 가지고 끈질기게 작품세계를 가지고 가는 우혜민 같은 작가도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여 대중적인 디즈니풍의 아이콘으로 현대인의 감성을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가 우혜민. 그는 지퍼 형식을 빌려 화면에 옵니버스나 스냅 시리즈로 신선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황창하 역시 중첩적인 이미지와 기하학적 구성을 결합시키며 모던한 색채로 절묘한 미술 세계를 드러내면서 눈길을 끈다. 얼마 전 관훈갤러리 전시에서 거의 솔드 아웃을 기록한 박은하 같은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작가의 시선, 그가 가진 치열한 표현정신이 어우러져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작가들은 바로 이런 작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