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광장은 1925년 서울시 청사 건립과 함께 조성된 이래 몇차례의 확장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공식 지위는 도시계획시설로서 교통광장이다. 하지만 지난 5월1일 잔디광장으로 만들면서 서울광장이라 부르고 있다.
도심에 위치한 덕택에 3·1 독립만세, 4·19 학생혁명, 6·10 민주화 항쟁 등이 발발했을 때 서울광장은 시민들의 힘이 결집되고 표출되는 장소였다. 자연히 시민들의 뇌리 속에 서울광장은 시민공간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서도 시민단체들은 ‘시민광장화’를 본격 요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태극기 물결과 함성은 그곳이 시민의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당시 시장 당선자인 이명박씨는 “시청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20대 시정과제 속에 포함시켰다.
서울시는 16억원을 들어 잔디광장을 조성한 뒤 지난 5월1일 하이페스티벌 개막과 함께 개장했다. 하지만 무늬만 광장인 현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시장의 약속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따지고 보면 시장은 약속을 두 번이나 어겼다.
市 철저한 통제로 ‘닫힌 공간’
먼저 ‘서울광장조성위원회’에서 시민 현상공모를 통해 ‘빛의 광장’이란 설계안을 선정했지만 기술상의 이유를 들어 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광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소통하며 맘껏 뛰놀 수 있는 개방공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잔디광장은 시(市)가 철저히 통제하는 ‘열려 있지만 닫힌 공간’으로, 시민보다 시의 힘이 온전히 관철되고 있다. 만든 과정이나 이용 방식 모두 광장의 진정성이 결여돼 있는 셈이다.
또 정치적 집회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서울광장을 서울시청의 부속시설로 편입하기 위한 서울시의 최근 시도도 문제다. 광장은 시민들이 개방적으로 활용하는 ‘공공재산’인데도 서울시는 도시계획시설 변경을 통해 시의 공무적 용도로 활용하는 ‘공용재산’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다행히 시의회가 용도 변경에 대한 지지를 보류했지만 서울시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는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파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서울시의 행태를 보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까 측은함마저 든다. 연일 이어지는 집회로 시의 시설물인 잔디가 망가지니 울타리를 쳐보겠다는 것은 시의 고육지책일 것이다. 하지만 광장을 만들면서 어떻게 저토록 불편한 잔디를 깔려고 했는지, 자치시대를 맞아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출을 시가 부추겨도 시원찮은 판에 저토록 막으려고 하는지, 또 이를 서울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기는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의 유일한 도심광장을 관료적 통제공간으로 두겠다는 대목에서는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박정희는 5·16광장을 통해 그의 독재권력을 과시했고, 히틀러는 광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그의 파시즘적 권력을 과시하지 않았던가. 시민의 것인 광장을 시의 부속시설물로 바꾸려는 발상엔 정부가 시민 위에 군림하던 독재시절의 향수가 배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칠까?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성의 기원을 그리스의 광장문화에서 찾고 있다. 서구 의회민주주의는 이 광장문화를 제도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인구 1천만명이 사는 서울에는 광장다운 광장이 없다. 광장의 부재는 시민적 삶의 영역에서 공공담론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지 못함을 뜻한다.
멋진 개방공간으로 가꿔야
서울은 더 많은 광장을 필요로 하고, 서울의 자치와 일상 삶은 이젠 광장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월드컵 때의 우렁찬 시민 함성이 서울 전역에서 들리도록 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서울에 광장문화를 일구는 첫 단추였다.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야 한다. 현상공모를 통해 선정된 ‘빛의 광장’ 안을 되살려 세계 최첨단 기술, 서울의 600년 역사, 서울시민의 자부심이 어우러지는 멋진 개방공간으로 가꾸어내야 한다. 이는 시민 누구나 원하는 바다. 하지만 서울시는 왜 그러한 꿈을 꾸지 않을까?
- 경향신문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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