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폰태너는 “미술사는 인류의 가장 감동적이고 의미로운 상징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상징이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 또는 그 대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시각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교환해온 인간에게 미술은 처음부터 중요한 상징의 바탕이자 배움터였다.

위대한 예술가는 이런 상징의 표현과 활용에 뛰어나다. 새로운 상징을 창조하기도 하고 그들 자신이 중요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는 물리적인 명암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이 됐다. 반 고흐는 시대와 투쟁하는 근대적 예술혼의 상징이 됐다.

상징이 미술뿐 아니라 사회 관계 일반에서도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정보나 지식, 이념, 도덕, 전통 따위를 구성원 사이에 효과적으로 소통시켜 주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대표하는 상징이 있어야 공동체는 통합성과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국기나 국가, 국가원수는 대표적인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한복과 한옥은 우리 전통의 상징이며, 4·19와 5·18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이런 상징의 긍정적인 잠재력을 얼마나 확장하느냐, 또 부정적인 잠재력을 얼마나 축소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통합과 연대는 큰 영향을 받는다.

모세는 잘 알다시피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지도자였다. 성경 ‘출애급기’ 32장 1∼24절을 보면,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간 사이에 불안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황금 소 우상을 만들어 경배한다. 이 사실을 안 모세는 크게 분노해 신이 준 돌판을 내던지는데, 이때 모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의 통합과 보호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다. 범부들의 입장에서는 상징을 통하지 않고 신과 만나는 것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그들은 모세가 자리를 비우자 우상을 만들었다. 모세의 부재는 상징의 부재였고 상징의 부재는 곧 불안과 공포의 시작이었다. 우상은 부정적인 상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상징의 부재보다는 나은 것이었다.

지난 연말 4대 개혁법안을 놓고 여야 간의 다툼이 치열했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는 날카로운 대립을 불러왔다. 국보법을 둘러싼 싸움이 이렇게 첨예했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인권이냐 안보냐 차원의 싸움이 아니라 가치와 세계관을 놓고 대격돌한 상징적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국보법을 폐지하자는 쪽에게는 국보법이 인권유린과 반민주악법의 상징이었고 존치시키자는 쪽에게는 보수적 가치와 국가 안보의 상징이었다.

정치적, 사회적 다툼이 상징 싸움으로 번지면 싸움의 진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입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징의 힘은 그 보편적 수용성에 있고 그것은 그것을 주도하는 쪽의 설득 능력에 비례한다. 올 한 해 우리 정치인들이 뛰어난 예술가들에 버금가는 상징의 기술자로서 탁월한 설득의 정치를 펼쳐 보이기를 기대해본다. 정치가 예술로 대접받는 그 날을. 오늘날은 이미지 시대, 문화산업 시대이자 상징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2005.1.11 '문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