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못하는 미술가는 미술가가 아니다 (AN ARTIST WHO CANNOT SPEAK ENGLISH IS NO ARTIST)."
엉뚱하게 보이는 이 문장은 지난해 12월 4일부터 올해 2월 3일까지 열리는 마로니에미술관 주최의 국제교류전 '새로운 과거'전에 초대된 므라덴 스티리노비치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개념미술적 발상의 문장을 써서 벽에 전시했던 것을 다시 T셔츠 위에 인쇄해 판매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벽에 전시됐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문장은 까만 천 위에 하얀 글씨로 인쇄됐기 때문에 부고(訃告)나 판결문처럼 단언적(斷言的)이고 선언적인 느낌을 준다.
영어를 할 줄 모르면 국제적인 미술가가 될 수 없고 국제적인 미술가가 아니라면 아예 미술가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 일차적으로 강하게 함축돼 있는 문장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반도나 발칸 반도 같은 국제미술계의 변두리에서 살며 작업하는 작가들의 처지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전시장 입구의 판매대에 놓인 이 '작품'을 보자마자 즉각 "그래, 바로 이거야"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개념미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이것이 전형적으로 개념미술적 형식으로 됐음을 금방 판단한다. 개념미술은 쉽게 말해 우리가 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기존 관념들을 명제적으로 다시 분석, 검토해 보려는 일종의 반성적 작업이다. '미술'이라는 개념, 그리고 미술사.미술작품.미술이념.미술가.전시회.미술관.미술비평.미술교육 등 제반 미술에 관한 여러 개념 또는 관념들을 흔히 몇몇 단어 또는 극히 단순한 문장이나 명제로 환원해 제시함으로써 보는(또는 읽는) 이의 새로운 성찰을 촉구하는 미술이다. 물론 때에 따라 오브제나 비디오 또는 행위나 설치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다소 장황한 텍스트로 구성되기도 한다. 미술이라는 것이 외부와 차단돼 폐쇄적인 자율적 논리로만 돌아가는 닫힌 세계일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서 제반 정치.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보이는 개념미술 작품도 많다.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작가 박찬경과 큐레이터 백지숙이 의욕적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회의 경우도 그렇다. 주로 미술 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미술과 정치, 미술과 경제, 미술과 혁명 또는 일상생활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 즉 개념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성찰하고자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작가들을 포함하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 주로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 작가 및 그룹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는 특히 오늘날의 억압적인 국제정치적 구도와 역학 아래서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현실 속에 생존해야 하는 작가로서의 고통과 고민, 그리고 정신적 혼란이 구석구석 드러나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 같이 정치적 분열과 살육적 전쟁 및 대를 물려온 가난, 억압과 수탈의 역사적 짐을 공통으로 지고 있는 이 두 지역 작가들의 고민은 여러 모로 상호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구호와도 같은 이 짤막한 문장이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편성된 국제미술의 자장(磁場)에서 변두리에 처한 나라나 지역에서 작업하며 동시에 언젠가 중심에서 인정받아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작가들의 상황 및 그들의 복합심리를 극적으로 압축해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화두로 삼아 '국제미술계'라는 유령과도 같은 관념에 지배되는 한국 미술의 현재 상황에 대해 여러 각도로 다시 따져보고 생각해볼 요량이다.
-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 약력: 1944년생,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동대학원 미학과(석사), 프랑스 파리1대학 예술학박사, 영상원장,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역임
- 중앙일보 2005 1. 19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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