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13 - 2005. 1. 17 파리 그랑빨레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두 번째 맞이하는 파리의 겨울을 실감케 한다. 이젠 제법 적응할 법도 한데, 요즘은 짧아진 일출시간으로 어두운 새벽잠을 즐기다 늦잠을 자는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해가 뜨나 싶더니 금방 어두워지며 빗줄기를 보이는 파리의 변덕스런 날씨뿐만 아니라, 사무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의 여운들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파리 생활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처럼 느껴진다. 창문을 통해서 시야로 들어오는 에펠탑의 불빛이 뿌연 煙霧속에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퇴근시간이 지척에 있음을 알게 된다.
미술 전문가는 아니지만, 남다른 호기심과 해외생활의 특권(?)을 누려보고자 지난 한 해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이곳 저곳 미술관이나 전시회들을 둘러 보았다. 마침, 얼마 전부터 터너-휘슬러-모네 3인의 작품전시회가 파리의 그랑빨레에서 열리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쯤 이 곳에서 고갱 특별전이 개최되어 관람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번 전시회는 영ㆍ프간의 화해조약(Entent Cordiale(1))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양국의 화가들이 상대국을 소재로 그렸던 작품들을 비교 전시함으로써 그 의미를 한층 빛내 주고 있다.

전시회는 다음과 같이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① 터너의 유산 : 작가의 흔적과 영향(유화, 수채화 그림) ② 寫實主義에서 印象主義까지 : 휘슬러 및 모네의 템즈강과 세느강을 그린 초기작품 ③ 印象主義에서 象徵主義까지 : 예술과 음악 : 휘슬러의 야상곡(<참고> 휘슬러는 자기 그림을 음악작품에 비유하여 교향곡 또는 야상곡으로 명칭) ④ 象徵主義 : 예술과 시 ⑤ 휘슬러 및 모네와 함께 템즈강을 回顧 ⑥ 에필로그 : ‘휘슬러 및 모네와 함께 베니스에서의 터너의 흔적을 찾아서’이다.
세 거장을 연결시키는 실마리의 시작은 당시 30세였던 모네가 1870년경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갔을 때부터이다. 모네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윌리엄 터너(1795-1851)의 작품과 제임스 휘슬러 아뜰리에에서 그의 <夜景화(Nocturne)>들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특히, 1859~1861년경에 휘슬러가 새긴 템즈강풍경 판화의 영향을 받아, 모네는 <안개낀 템즈강> 풍경들을 그리게 된다. 인상파 그림의 특징인 순간적으로 눈에 비친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인상을 본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시간의 추이에 따라 달라 보이는 템즈강의 모습들이 이들 작품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는 모네가 1883년이후 정착해 여생을 마쳤던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그렸던 3장의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터너와 휘슬러의 작품이 모네에 미친 영향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모네가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도 그가 그린 <印象-‘해돋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연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이 작품은 파리의 블로뉴숲 옆의 조용한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마르모땅 클로드모네(Marmottan-Claude Monet)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이번 기획전을 위해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됨으로써 자리를 빛내 주고 있다.

휘슬러와 모네는 돈독한 친분관계를 쌓게 되어, 후에 서로 도와가며 파리와 런던에서 전시회들을 갖는다. 휘슬러는 파리에서, 모네는 영국에서 서로가 명성을 얻게 되며, 이 때 휘슬러의 작품으로는 <하모니>, <심포니>, <경화> 등의 연작이 있으며, 회화와 음악과의 상관성에 착안하여 비구상적 경향의 작품을 시도한다. 안개의 화가라 불리 우는 터너처럼 모네는 템즈강과 세느강을 그리면서 안개효과를 시도하여, 공장굴뚝에서 내품는 연기로 인해 오염된 런던의 하늘을 표현코자 하였다.
터너와 휘슬러가 그렸던 수많은 유화, 수채, 그리고 판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함께 보면서, 모네가 1871년경 그렸던 템즈강 초기작품들과 1899, 1900 및 1901년경에 런던에서 그렸던 템즈강 시리즈와의 비교를 통해 상호 연관성과 화풍의 진화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시회가 갖는 남다른 의미라 할 수 있다.
1908년경 모네가 베니스에 갔을 때, 그가 그렸던 작품들을 통해서도 이 세 거장들의 작품들을 같은 시각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즉, 모네가 그린 <대운하 궁전>과 <산 지오르지오마지오르 섬> 작품들의 경우, 이전에 그가 그렸던 영국에서의 작품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늦은 시간이지만 단체 손님들로 붐비는 전시장을 서둘러 빠져 나오니, 어느덧 내린 어둠으로 인해 파리의 겨울밤은 또다른 옷을 입고 있다. 수 많은 인파의 틈바구니 속을 헤집고 부유하듯 밤거리의 향기를 느끼면서, 현재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파리의 印象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