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왕두가 매스미디어와 스펙터클 사회라는 이슈에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것은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9개월간의 교도소 수감을 거쳐 프랑스로 망명 온 이후였다. 그는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엄청난 정보의 물결에 강한 충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매스미디어를 자신의 작업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선택했다.

파리 빨레드도쿄에서의 전시는 28m의 <공간-시간의 터널>이라는 설치작품을 통과해야지만 접근이 가능토록 디자인돼있다. 온갖 유형의 신문과 잡지들로 터널의 벽을 만들고 그 사이 사이 86개의 텔레비전 모니터들을 설치해 놓았다. 이 모니터들은 일제히 세계 각국에서 전파되는 위성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보여준다. 바그다드의 폭격에서 아프리카의 기아, 아마존의 자연 재해, 그리고 영국 왕실가의 바캉스 등...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동시에 공존하지 못할 모든 종류의 사건들이 혼재해서 그 사이를 지나가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이런 아찔한 경험은 이해 못할 다국어의 혼합과 함께, 경사가 꽤 가파른 터널의 계단을 밟을 때의 긴장감으로 고조된다. 의도적으로 소화기관의 모양을 흉내 낸 이 터널의 형태는 그야말로 관객을 미디어라는 소화기관에 의해 소화되는 음식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인간은 미디어의 능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 역으로 소화된 후 분비되는 대상이 된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현대사회의 상황은 입체화되고 물질화된 왕두의 작품 속에 관객의 참여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관객의 흡수를 통해 재현된다. 한편, 터널 끝에 마련된, 다른 전시장소와의 연결통로인 미끄럼틀이란 도구는 터널이 내뿜는 이미지들의 유희와 함께, 환상적인 놀이로서의 스펙터클 세계를 구성한다.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고 소화되는 인간으로서의 이런 상징적 장치는 “행진(Defile)”이란 제목의 작품이 설치돼있는 방으로도 연결된다. 이 방의 입구를 이루는 벽 전체는 일본 성인 사이트를 그대로 재현한 웹사이트의 한 화면이고 바로 그 화면을 문자 그대로 통과해서 방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이처럼 가상의 세계로 접근하도록 함으로써 전시의 공간 구성과 거기에 설치된 작품들 자체가 관객을 흡수하도록 연출했다.
‘유해한’ 성인 사이트를 통해 도착한 방에서는 중국의 각종 언론 매체에서 선택한 전투적인 이미지들을 합성수지로 떠서 만든 조각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바로 <왕두 퍼레이드>의 기나긴 전시 여정에 있어 그 노선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작품이다. 전시장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진 혹은 ‘버려진’ 복사물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탱크, 미사일, 군인 등의 이미지들이 조각의 형태로 설치돼 있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의 혁명적 낭만주의를 상징적으로 들려주는 30년대의 군가가 울려 퍼진다.
왕두가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론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는 각종 언론매체에서 정치계, 스타시스템, 대중문화 혹은 대규모의 국제적 분쟁 등에 관련된 인물들과 사건들을 다룬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삼차원의 볼륨으로 복제한다. 여기서 복제된 상과 복제의 ‘원본’ 사이에는 항상 차이가 존재한다. 평면에서 입체로의 변환 외에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원본 이미지의 크기가 자유롭게 확대되거나 축소되고, 저급하고 요란스러운 느낌의 색들이 조각에 칠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평범하고 일회적인 이미지들은 때로는 자극적인 자세와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부각되면서 하나의 기념비적인 조각 아이콘으로 변형된다.

왕두는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폭로
왕두의 작업이 갖는 핵심은 현실을 물질화시킨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물질화를 회피하는 정보를 양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볼륨과 무게로의 변형은 감각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만 동시에 왕두 특유의 어법이 더해지면서 스펙터클의 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왕두는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폭로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을 극단으로 고조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제까지 심도 있게 연구되지 않은 부분은 바로 왕두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사진과의 관계이다. 왕두의 조각들은 사진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 언제나 사진에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왜곡과 변형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신랄한 독해이다. 이런 비판적 자세는, 소위 지구적인 네트워크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 있어,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글로벌리즘이 사실은 선전과 선동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시간의 단절성, 프레임의 선택, 왜곡된 상의 크기 등 무수히 많은 ‘비현실성‘을 물질화시킴으로써 ’현실성‘과 ’객관성‘을 가장하는 미디어의 속성과 사회적 지적 경제적 조작을 가능케 하는 이미지들의 강력한 힘을 폭로하면서 모든 유형의 이데올로기와의 은밀한 협잡을 폭로한다.
그 전시 기간이나 규모 그리고 왕두의 지명도면에서 이 퍼레이드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무엇보다도 한때 길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갔던 무명의 중국인이 어떻게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하나로서 프랑스에서 그 작가적 입지를 굳힐 수 있었는지가 더욱 궁금할 것이다. 이것은 왕두가 초기 프랑스에서 겪었던 상황과 현재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무명작가들이 수없이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런 유형의 질문에 답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속된 말로 예술계에서 로비도 중요하고 인맥과 돈도 필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할 테지만, 왕두의 행보를 훑어보면, 예술가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자각과 끝없는 비판의식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무엇보다도 바탕이 돼야한다는, 또 한번 지극히 평범한 결론에 이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