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서울을 떠나 유럽출장을 다녀와 보니 한국 미술계의 술렁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모 갤러리의 사상 초유의 신진작가 지원, 사립미술관의 작품매매 허용 검토, 국가가 상정하려는 미술은행정책 등 뭔가 변화하려는 미술계의 움직임이 다각도에서 일고 있음이 한눈에 읽혀졌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미술계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단지 그 변화의 진행들이 얼마나 엄격하고 반칙없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 한국 미술계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필요한 변화의 요소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격한 잣대는 상실되고 어쩔 수 없이 반칙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인 변화 만큼이나 미술공간 혹은 미술계 자체 내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들은 미술계의 문제점을 잘 알기에, 제대로 된 목소리로 적절한 곳을 향해 해결방안을 요구할 수 있다. 나라의 법적 움직임이 미술계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가도 자꾸만 빗나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의견들이 충분하게 소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일고 있는 요즘의 변화들은 21세기 밀레니엄시대에 돌입하면서 유럽의 여러 미술공간에서 다양하게 시도됐다. 그리고 현재 그 시도들은 차례차례 성공사례들로 쌓여가고 있다. 영국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테이트모던 프로젝트’에서부터, 오스트리아 빈의 ‘뮤지엄쿼터 프로젝트’,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뮤지엄쿼터 프로젝트’, 독일의 뒤셀도르프가 진행했던 ‘NRW-FORUM 프로젝트’,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변화를 시도한 벨기에의 ‘엑스트라시티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각국 정부와 미술계의 긴밀한 소통에 따라 나타난 변화들이었다.
특히 이런 유럽 미술계의 변화들에 대해 눈여겨 볼 만한 것은 대부분 미술을 잘 모르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중과 가장 밀접하게 접해 있는 미술 공간들의 기술적인 대화 시도가 정부의 미술정책 결정에 설득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즉, 유럽의 미술계는 단지 미술이 엄청난 자본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명분만 있는 영역이 아니라, 미술계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수익구조와 잠재적 수익의 가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미술공간들이 대중의 심리와 요구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몇 년 전 내부공사를 훌륭히 끝낸 독일 뒤셀도르프의 NRW-FORUM이 내놓았던 계획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미술관 로비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카페였다.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나라 미술관의 카페와 비교해 보면 북적대는 대중들의 발길을 미술관으로 모으는 카페의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말해 미술계의 거대한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에 대한 준비가 성공적인 변화의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만일 한국의 미술계가 변화를 꿈꾸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면, 내부적으로 충분한 대화의 준비가 안 돼 있을 경우 지금처럼 성공의 문턱에서 걸림돌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세계일보 200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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