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각급 지자체(地自體)의 도시건축 비전으로 각광받고 있는 영화 드라마 세트장의 관광단지화 전략은 관광수익과 지역홍보라는 얄팍한 상술과 계산이 조합된 결과다. 땅덩어리가 크지 않은 나라에서 자립형 지방경제의 실현을 목표로 하다 보니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드라마 세트장 같은 가설 건축에 중복 투자하고 여기저기서 유사 프로그램의 호객 행위를 접하게 된다. 전 국토의 디즈니랜드화가 아닐 수 없다.
강원도 정동진 ‘모래시계’, 경기 부천 ‘야인시대’, 경북 문경 ‘태조 왕건’, 제주도 섭지코지 ‘올인’, 충북 충주 재오개 ‘대장금’에 이어 인천 무의도 ‘천국의 계단’, 경남 하동 평사리 ‘토지’, 전북 부안 ‘불멸의 이순신’, 전남 완도 ‘해신’ 촬영장 등등. 이 모두가 대박을 터뜨린 드라마 세트장이다. 일부는 세트장 전체가 관광단지화되었고, 일부는 가설 건축물 한 동이 덩그라니 놓여 있다. ‘선(先) 철거 후(後) 복원’ 논쟁으로 분분했던 실미도의 경우 동명의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몰이를 기록하면서 지역사회 일각에서 세트장 복원을 강력히 주장하는 아이러니까지 유발시켰다.
국내의 여러 지방도시가 드라마 촬영지의 유치를 선호하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기왕 그곳에 있어온 건축유적 또는 마을·거리·산지 등에서 촬영장소를 찾아내어 작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만큼 이견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문제는 가짜 세트장을 지어놓고 그것의 임시방편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역설적인 가치전도에 있다.
각급 지자체가 드라마 세트장으로 지역 내 특정장소의 개발을 두둔하고 그것을 관광자원화하는 등식이 무조건적으로 환영받는 것은 투기형 문화주의의 소산이다. 나는 문화관광산업의 옷걸이를 앞세우며 오락도시로 치닫고 있는 돈벌이 구상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도시 전체에 파급되는 긍정적 기대효과와는 다른 것이다. ‘하이퍼 리얼’한 조작된 장소 만들기는 삶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는 죽은 인형의 마을일 뿐이다.
당장의 수입원에 목말라하는 천박한 지역주의가 전국토의 세트장화를 부추기고 있는 기(奇)현상은 지방의 고유색을 흐려놓는다. 가공된 역사상품, 거품성 대중문화로 그 자리를 채운 뒤 드라마가 떠나고, 영화가 떠난 그 장소에서 한탕주의의 위조된 문화를 감상하는 우리는 말 그대로 세트장의‘폐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지방 고유의 생활공간이 담고 있는 매력의 발흥이 아니라 단지 통속적 대중심리를 자극하고 소비를 충동질하는 급조된 장소로부터의 이익추구는 지역문화환경의 장래성을 염두에 둔 문화정책과 정면으로 상충된다. 그보다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온 가로의 성격을 규명하고, 장소에 의미를 달아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음직한 낡은 간판 하나에서 도시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 지역 특유의 색감과 조형성을 지닌 벽면, 창호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가치 있게 바라보며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도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것은 적어도 인스턴트식 도시의 장소 만들기하고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과 같이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장을 만들면 지역사회에 돈이 모인다는 식의 환상을 심어주지는 못할지 몰라도 사람 사는 장소의 이야기성이 누적되는 것이야말로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며, 그로써 지역 내 특정 장소에 항구적 재미를 심는 작업이 오롯하게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눠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조선일보 2005.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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