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칼, 그 둘을 한국과 일본의 상징물로 삼을 수 있다. 붓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상징이다. 이에 비해서 칼은 단연 일본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두 나라의 문화를 비교해 보면 쉽사리 알게 된다.
그 기간 동안 한국사회의 지도층은 사대부였고 또 선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중세기 한국은 ‘문(文)의 나라’였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무사(武士)인 ‘사무라이’라야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있었다. 일본은 ‘무(武)의 나라’였다.

한국의 선비가 먼 길을 갈 때는 허리에 붓통을 차고 나섰다. 이와는 달리 일본의 사무라이는 바깥 나들이를 할 때 으레 허리에 칼을 차고 나섰다.

칼이라지만 그건 사뭇 별났다. 땅바닥에 대고 짚고 서면 한 쪽 끝이 가슴에 닿을 만큼 긴 장검을 차고 다녔다. 한데 그걸로는 신에 차지 않았던지 조금 짧은 단검을 장검과 겹쳐서 차고 다녔다. 인류 역사에서 대소 두 자루의 검을 허리에 차고 다닌 유일한 인종이 다름 아닌 일본인이다.

한데 이처럼 길고 짧은 두 자루 검은 용도가 서로 조금씩 달랐다. 장검은 남을 칼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서 단검은 사무라이 자신이 자기의 배를 가르는 데도 사용했다. 이래서 이 두 자루의 검은 각기, 일본인 특유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대변하게 된다. 그나마 두 자루 검을 차고 다닌 일인들은 타인 학대를 일삼는 사디즘과 자기 학대를 일삼는 마조히즘을 겹친 증후군, 이를테면 ‘사디·마조히즘’ 복합 증후군에 길들어 있는 셈이 된다.

중세기 일본 사무라이들은 ‘기리스테 고멘(切捨て ごめん)’이란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했다. ‘기리스테’란 남의 목을 잘라서 버린다는 뜻이고, ‘고멘’은 실례를 용서하거나 이해하라는 뜻이다. 하니까 남의 목숨 칼질하고도 ‘미안하다’, 오직 그 한마디 하는 걸로 사무라이들은 칼잡이다운 본색을 자랑했던 것이다. 이건 극단적인 사디즘이다. 이 또한 인류 역사상 매우 희귀한 일이다.

그런가 하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심하게 체면이 깎였거나 했을 때, 사무라이들은 배를 갈라서 자살하는 걸로 면책 또는 면죄를 했을 정도가 아니다. 그 잔혹한 자살을 명예로 떠받들기조차 했었다. 이건 마조히즘의 극치다.

그러던 일인들이라 별의별 칼질을, 그것도 사람 상대의 난도질을 일삼았다. 예컨대 ‘기리아이’(斬合い·서로 난도질 하기)니 ‘다치우치’(太刀打ち·큰 칼 치기)니 또는 소위 ‘진검(眞劍) 승부’(참고로 이 괴이한 일본말은 우리들 한국인은 쓰지 말아야 한다) 등이 그 끔찍한 보기들이다. 이렇듯 일본 문화에서는 칼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 선비들이 손에 먹물을 묻힐 때 저들은 온 손에 남의 피와 더러는 자신의 피로 얼룩지게 했다. 오늘날도 우리는 여전히 일본인들의 ‘칼의 사디·마조히즘’이 기세 등등한 것을 본다. 그것도 한국과 중국 상대로 칼날을 갈고 있음을 본다.

특히 다름 아닌 저 ‘기리스테 고멘’의 앙칼진 외마디를 오늘의 일본 극우파들은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외국에 대해서 저지른 갖가지 비행을 미화하려고 드는 것은 남의 목 자르고도 태연하게 ‘이해해 줘!’라고 웅얼댄 바로 그 ‘기리스테 고멘’의 국제판이다.

하지만 붓은 늘 칼을 이겨 왔다. 이야말로 ‘붓의 문화국’으로 자처해도 좋은 한국인의 긍지라야 한다.


- 세계일보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