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0. 15 - 2005. 4. 10 IMA
먼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아랍 세계 인스티튜트(이하 IMA)란 곳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아마도 IMA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세느 강변의 모던하면서도 이국적인 건물 사진은 한번쯤 접해 봤을 것이다. 건물의 남쪽 면 전체가 아라비아의 기하학적 문양을 참조한 창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혀서 마치 사진기의 조리개처럼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해 준다. 이 독특한 건물에 들어선 IMA는 프랑스와 이집트를 비롯한 22개의 아랍권 국가들 사이 협력의 결실로 1987년에 문을 연 문화 교류의 장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열리는 특별전들은, “마티스의 모로코”, “들라크르와에서 르느와르까지: 화가들의 알제리”, “동방의 기독교 미술”, 그리고 ”부르디외의 알제리 사진전“ 같이 이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전시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랍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테마들로 기획된다. IMA에는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장 외에도, 상설전시 박물관과 시청각 자료실, 도서관,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테크, 공연장, 강연장, 극장, 아트숍, 레스토랑 등을 갖춘 그야말로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섯 가지 파라오의 얼굴들
이곳에서 몇 년 전에 열렸던 마티스 전시 때도 2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려 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엔 전시가 시작한지 벌써 몇 달이 지나고 게다가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랴 늦장을 부리고 나섰다.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고 한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했다. 지난 20년간 수도 없이 이집트 문명을 테마로 한 대규모 전시들이 이곳저곳에서 개최돼왔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번 전시는 카이로의 문화재최고심의회(SCA)와 루브르미술관의 협력이 맺은 결실이다. 전시를 기획했던 Christiane Ziegler는 “이 전설적인 문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집트의 신비와 권력을 상징하는 파라오라는 주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오늘날 근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수많은 나라들로 분열된 거대한 영토를 3천년이 넘게 지배했던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관심은 신권을 물려받은 통치자,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개자로서의 통치자가 갖는 카리스마적인 측면에 집중된다. 이집트인들이 갖고 있었던 세계에 대한 관념은, 악과 혼돈을 물리치기 위해서 창조의 신에 의해 지상에 정착한 파라오가 지배하는 우주였다. 따라서 파라오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문화, 종교와 정치가 혼재하는 이집트 문명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파라오의 거대 역사가 마감한 지 이천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그 신화와 유산이 전해지는 이 초인간적인 힘을 갖고 있었던 통치자들은 누구인가?
물론 수많은 파라오들이 존재했지만, 이번 전시는 개별적인 파라오들의 얼굴이 아니라 일반 명사로서의 추상적인 파라오가 갖는 얼굴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신비를 벗겨낸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미 베니스에서 2002년에 Palazzo Grassi에서 동일한 주제로 전시가 있었지만, IMA에서는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서 온 115점, 루브르미술관에서 빌려온 90점,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대학과 런던의 대영박물관 등에서 온 몇 점의 유물들로 그 전시품만을 대체한 것이다.
그렇다면 파라오의 얼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나? 전시는 전(前)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매우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의 수염달린 조각상부터 그리스·로마 시대의 걸작인 프톨레마이오스의 부조에 이르기까지 15개의 파라오 상들로 시작된다. 크게 6개의 다른 섹션으로 나뉜 전시 구성은 파라오의 여섯 가지 다른 얼굴들을 보여준다. 먼저, 세상을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신에게서 신권을 받은 통치자의 얼굴이 다양한 상징들과 이미지들로 표현된다. 두 번째는 신전을 주관하는 사제로서의 얼굴이다. 그러나 여기서 파라오는 신들과 거의 동등한 위치를 갖는 존재이다. 세 번째 얼굴은 적들을 물리치고 세상의 평정을 보장하는 전사이다. 하지만 이 얼굴은 적을 악 그리고 혼돈과 동일시함으로써 그것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측면도 갖는다. 네 번째 얼굴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행정이 매우 체계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이루어졌던 이집트, 그리고 그 나라의 번영을 보장했던 군주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한편, 파라오의 공식적이고 종교적인 삶 혹은 죽음 이후의 삶이 잘 알려져 있었다면, 그의 인간적인 일상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파라오와 왕실이 사용하던 가구, 장신구, 식기 등에서 파라오의 다섯 번째 얼굴, 즉 인간으로서의 파라오의 얼굴을 확인한다.
전시장을 나오며...
수천 년을 갈라놓는 문명 앞에서 갑자기 단축되어버린 시간은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턱하고 버티고 서있었던 거대한 투탕카멘의 조각상은, 충분히 탄성을 자아낼 수 있을 만한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비좁은 전시장 안에서 파라오의 모든 권위와 신성을 박탈당한 채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오늘날 사람들이 파라오에 대해 갖는 관념은 수천 년 전의 이집트인들을 지배했던 그것과는 다르다. 죽지 않고 영원히 회귀하는 존재로서의 파라오의 여섯 번째 얼굴은, 왕의 죽음을 장식했던 장신구들과 미라를 만드는 데 사용된 도구들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현대인의 눈에는, 비좁고 작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잤던 투탕카멘 만큼이나 영혼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미라가 되어 관에 누워있었던 아모시스 역시, 엄청난 권력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신적인 존재는 아닌 ‘인간’ 파라오일 뿐이다. 현대인의 파라오에 대한 호기심은, 땅과 우주를 지배하는 주인으로서 초인간적인 권력과 신화를 유지하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파라오가 그런 ‘전설적인 문명’을 만들었을 수 있었느냐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권력과 신화는 어디서 왔느냐의 문제이다. 하지만 불행이도 이 전시에서는 그런 파라오의 신비를 그야말로 신비로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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