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예창작 프로그램이다, 낭독회다, 뭐다 해서 지난해부터 외국을 들락거릴 일이 꽤 자주 생기는 편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한 한국문학 순회 낭독회에 참여하느라 지난 3월에 이어 다시 한 번 독일을 다녀오게 되었다. 일정이 없는 오후를 택해 내가 부지런히 찾아간 곳은 바로 쾰른 대성당 근처에 있는 ‘루트비히 뮤지엄’이었다. 거기에 독일 화가 키르히너의 그림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서 뜻밖의 전시 ‘횡재’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가니 막상 키르히너 그림보다는 막스 벡만의 그림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막스 벡만이라고 하면 내가 키르히너만큼이나 좋아하는 화가였다. 나는 입을 헤 벌린 채 미술관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게다가, 이런 즐거운 우연이 또 있을까! 미술관 한쪽에서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네 시간 동안 달려 파리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부터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센터, 뤽상부르 등 나의 첫 번째 파리 미술관 순례를 시작했다. 오르세 뮤지엄에서 나는 루트비히 뮤지엄에서처럼 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 전시를 만나게 되는데 그 제목이 ‘인상주의 특별전’이었다. 그 뜻밖의 전시회에서 지난해 문학 행사를 하러 갔던 도시 시카고, 그 뮤지엄에서 보았던 쇠라의 그림과 고흐의 자화상 중 한 점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그 그림들 앞으로 미소 지으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낯선 도시에서 다시 만나게 된 그림들, 내가 두 번째 보게 된 그 그림들은 이제 오롯이 내 그림이 되었다.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다.
루브르 뮤지엄에서 유명한 작품은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이외에도 베르메르의 ‘레이스를 짜는 여인’과 앵그르의 ‘터키탕’ 같은 그림들이 있다. 루브르에 갔을 때 그 그림들이 안 보이기에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았더니 ‘터키탕’은 전시 때문에 중국으로 갔고 ‘레이스를 짜는 여인’ 역시 전시 때문에 내가 떠나온 지 며칠 안 되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두 그림 모두 여기 없다고 했다. 딱히 그 두 점의 그림 때문에 루브르에 온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허탈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르세 뮤지엄. 거기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잘 알려져 있듯이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과 앵그르의 ‘샘’이다. 내가 갔을 때 마네의 그림은 일본에 대여 중이었고, ‘샘’은 역시 중국에 가 있다고 했다. 결국 나는 루브르, 오르세 뮤지엄에 가서 거기서 가장 대표적인 그림들은 못 보고 온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루트비히 뮤지엄’에서 만난 피카소 특별전이나 뤽상부르 뮤지엄에서 만난 ‘마티스 콜라주 전’, 오르세에서 본 ‘인상주의 화가 특별전’ 같은 전혀 뜻밖의 전시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그 그림을 꼭 보고자 찾아간 미술관에서 정작 그 그림은 못 보고 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보고 싶은 그림을 못 보고 올 때는 마치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고 돌아오는 것처럼 허탈하기도 하지만 뜻밖의 그림들을 보고 올 때는 횡재를 한 느낌이기도 하다.
책·그림서 삶의 즐거움 맛봐
얼마 전에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다가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는 왜 그렇게 호퍼의 그림 속엔 길과 여자와 주유소와 호텔, 그리고 고독이 묻어 있을까 궁금해 하곤 했다. 그 책을 통해서 호퍼가 자동차 면허를 딴 이후로는 일 년에 몇 달은 길 위에 살면서 모텔 방이나 차 뒷자리, 야외나 식당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책에서 호퍼에 관한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독서의 즐거움이었다.
책을 읽고 때로 그림을 보는 것. 그러고 보니 내 삶의 많은 부분은 문학이나 그림, 즉 예술이 가르쳐주고 채워주고, 그리고 안내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실은 바로 이것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기도 한 것이다.
경향신문 2005.5.11 [문화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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