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자 ‘르 몽드’를 보니, 인터넷 검색 엔진 회사인 ‘구글’이 ‘구글 프린트(Google Print)’ 프로젝트를 잠시 유보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구글 프린트’란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시연된 도서 전산화프로젝트로, 같은 해 12월 14일 구글은 영미의 주요 도서관에 소장된 1500만권의 도서를 6년 안에 전산화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저작권을 둘러싼 찬반 여론이 비등하였고 구글에서는 세간의 걱정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계획에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도서 전산화는 지식의 민주적 공유와 확산이라는 취지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고 또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발췌본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는 구글 프린트의 웹사이트(http://print.google.com)에 들러 시험해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현재 고전의 순수 텍스트본을 제공하고 있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나 세계의 여타 학술·문화 데이터베이스(DB)에 비해 월등한 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최고의 인터넷 검색 엔진이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님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방향은 이쪽이 분명하다. 때문에 기존 출판 산업이 붕괴할 것이라거나 저작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는 산업형태의 자발적 개편과 기술적 보완을 통해서 점차로 씻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전산화되는 도서의 편향성이 그것이다. 즉 구글의 계획이 완성단계에 이르면 영어로 쓰인 대부분의 학술·문학 도서가 전 세계에 보급되는 셈이 되고 따라서 세계의 문화와 지식과 문학을 둘러싼 사유 형태는 영·미적인 방식에 심대한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프랑스의 전 통상부장관인 장-노엘 자네(Jeanneney)는 문화와 사유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 유럽의 독자적인 도서 전산화 계획을 촉구하였고, 올해 4월 27일 유럽의 19개 국립도서관이 ‘대안적 전자 도서관 프로젝트’에 합의하였다고 ‘르 몽드’지는 전하고 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지식이든 문화든 문학이든 중립적인 것은 결코 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대중문화가 미국적인 방식으로 재편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그것은 세계인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인프라에서부터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미국에 저항하는 견해들이나 민족주의적 정서들조차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구조가 미국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유 캔 두 잇’과 ‘아이 디드 잇’으로 요약되는 자아 전능의 세계관 말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발성을 극단적으로 부추기는 대신 인간의 운명적인 한계와 타자의 근본적인 이타성(異他性)을 무시한다.

어떤 문화도 지식도 중립적인 것은 없다는 것은 곧 생물 다양성과 마찬가지로 문화와 지식도 최적의 방식으로 다양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한국어로 씌어진 지식과 문화가 보존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 가지 전제 하에서만 합당한 얘기다. 하나는 한국어로 씌어진 지식과 문화가 스스로 세계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결과로 한국어가 향후 지배 언어들의 각축 속에서 소수언어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명령은 너무나 험난한 길을 앞에 두고 있어서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난다.


세계일보 2005.8.16 '문화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