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꾼다.
2005. 6. 24 - 10. 30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 재단


여름철이면 파리의 미술관이며 갤러리들은 긴 바캉스에 들어가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도 많고 이렇다 할 전시도 적어진다. 하지만 카르티에 재단은 그런 분위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소위 ‘튀는’ 전시를 기획해서 길고 지루한 여름을 활기에 넘치도록 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시작해서 10월 말까지 네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꿈꾼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를 함께 만들고 있는, 전 세계 곳곳으로부터 온 20대 초반에서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바로 그 축제 분위기의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은 이제 막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신진 작가들이다. 아직 미술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있고, 이제 막 졸업을 한 사람도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미술계라는 체계 속에 속해 있지도, 더더군다나 미술 시장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경우에 따라 이번 전시가 처음으로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관인 카르티에 재단을 통해 국제적인 무대에 진출하게 되는 기회를 부여하는 행운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재단이 지난 20년 동안 전시나 소장품 구입, 공공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인연을 맺어왔던 기존의 작가들에게 의뢰해서 그들이 발굴했거나 후원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이런 식으로 카르티에 재단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작가들을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서로 다른 장르 간의 벽을 없애고 예술가들과 색다른 관계를 형성한다는 재단의 설립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볼탄스키, 낸 골딘, 게리 힐 등과 같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 36명이 추천했던 젊은 작가들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개인적으로 따로 신청한 수백 명의 예비 작가들이 가세했기 때문에 카르티에 재단은 전부 1200개가 넘는 신청 서류를 검토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 <나는 꿈꾼다>라는 전시를 위해 58명의 조형 예술가들과 36개의 스펙터클 프로젝트가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여기에 프랑스 출신의 작가들이 상당한 비중(전시에 12명, 스펙터클에 66명 참가)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의 현대미술이 국제적인 미술계에서 그만큼 영향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최근 국제 미술 시장에서 프랑스 출신의 작가들이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에서 주최하는 전시이기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나는 꿈꾼다>는 미술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모험인 동시에 말 그대로 현대미술의 새롭고 실험적인 한 단면이고, 젊은 세대들의 초상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막 작업에서나 삶 자체에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려는 젊은 창작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아직 정비되지 못한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는 세대들이거나 그 정체성 자체를 거부하는 세대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고 자시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축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이제껏 배웠던 틀과 영향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한동안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경향을 보여 왔던 오브제는 사라지고 대신 사진, 회화, 그리고 특히 비디오 작업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대중매체와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 이들 작가들에게서 미술 평론가 필립 다장(Philippe Dagen)은 ‘예상치 못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감춰진 아이러니’와 ‘섬세한 뒤집기’이다. 그리고 국적과 사용한 테크닉에 관계없이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정신의 상태이다. 얼마 전 퐁피두 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이탈리아 아르테 포베라의 작가 주세프 페노네(Giuseppe Penone)가 말하는 것처럼 이들의 작업에는 평범해 보이는 것의 표면 너머에 예상치 못한 기이함이나 불합리,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치 못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공유하는 엄청난 가상의 공간을 고려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싶다. <나는 꿈꾼다>는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꿈을 꾸는 듯한’ 위태롭고 모호한 ‘정신의 상태’를 보여준다. 어떤 예술적인 제약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두려움 없는 젊은이들의 감각이 그들의 작업에 묻어있다.
이런 유형의 전시는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아무리 많은 작가들을 참여시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현대미술 전체의 경향을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선택의 문제는 늘 개인적인 취향이나 그것이 제도적인 것이든 아니든 어떤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가 <유랑의 축제>라는, 전시 기간 내내 진행될 또 다른 109명의 무용가, 행위예술가, 의상 디자이너, 음악가 등과 함께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순수함으로 활기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전시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현대미술의 지형도 가운데 한 단면만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