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지. 기막히게 청명한 날씨 때문에 괜히 뒤숭숭했던 게 꼭 한 주 전인 7일이었다. "쩝, 이거 일하겠나" 싶은 참인데 약속 하나가 퍼득 떠올랐다. 서둘러 가회동의 영산(靈山) 선생댁을 찾았다. 스스로 '벼루먹 수집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의 연벽묵치(硯癖墨痴)를 자임하는 권도홍(73)선생을 뵙는 약속인데, 막 들어서자 사진가 강운구씨부터 보였다. 기자보다 한발 앞서 와 영산이 요즘 구한 벼루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렇다면 참석하지 못한 까치글방 박종만 대표만 손해보는 셈이다. 묵향(墨香)의 멋스러움을 즐길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이게 송시열의 수제자였던 17세기 수곡(睡谷) 이여의 벼루예요. 뒷 밑의 글씨 좀 보소. '벼루가 사람을 시켜 모습을 나타냈을까. 사람이 벼루에 모습을 드러냈나? 오래 전 수곡의 보배로 그의 학문을 돕더니만…'. 모두 한문 70자인데, 그게 리윰미술관의 한학자 임재완씨의 해석이오. 벼루 위쪽에 천하절경을 만들어놓은 이 조각은 정말 일품이야…. 그건 그렇고 이 벼루도 좀 봐줄래요?"
영산은 신났다. 본디 완상(玩賞)의 맛은 함께 즐겨야 하는 법. 사실 영산의 후배 강운구씨야'당대의 안목'인 고(故) 한창기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에게서 배운 게 많은 분이다. 한창기는 일찌감치 문방사우 콜렉션에도 손을 댔으니까. 어쨌거나 영산이 꺼내놓은 두 번째 벼루는 더 놀라웠다. 조선조 송천(松泉.자는 安岐임)이 썼던 벼루란다. "송천이 누구죠" 했더니 영산이 장탄식부터 내뱉는다. 17세기 중국 땅에서 활동했던 최고의 콜렉터.감식가인데, 그의 존재 자체를 전문가들이 모른단다.
"중국 서화에는 감식안을 가진 누구누구가 그걸 보고 진품임을 보증한다는 뜻으로 감식 도장들이 줄줄이 찍혀 있게 마련이오. 그중 '안기지인(安岐之印)'이란 도장이 있으면 천하의 보증수표인데, 그 안기가 바로 송천이야. 꼭 '조선인'이라고 덧붙이던 멋쟁이가 그 사람인데, 청대황실에서 보관했던 왕희지 글씨첩 '원환첩(遠宦帖)'에도 그 도장이 찍혀있어요. '묵연휘관(墨緣彙觀)'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나 그걸 봤다는 사람이 없지. 아쉬워. "
어쨌든간에 그날 기자는 분에 넘치는 홍복을 누렸다. 지척의 인왕산 자락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인 양 뿌듯했다. 컴퓨터 시대에 만년필은 물론 붓.벼루 따위야 까맣게 잊고 살지만, 그날 기막힌 구경과 함께 옛 선비의 아취 한 자락까지 배웠으니…. 영산은 신문기자 출신.
1960년대 동아일보 시절 벼루.먹 수집에 빠졌고, 지금은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이 인정하는 당대의 콜렉터다. 그러나 '문방청완'이라는 책도 펴낸 그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유를 기자는 안다.
왕년의 문화재 지킴이인 간송(澗松) 전형필도 벼루.먹에는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 때문인지 아기자기한 연적(硯滴)은 국보.보물 지정품이 10여 점이지만, 막상 문방사우 벼루.먹.붓.종이는 찬밥이다. 연적은 '문방 패밀리'의 서자뻘인데도…. 조선조 때에 연적은 겨우 '문방제우(諸友)', 즉 '나머지 식구' 정도로 분류됐다. 우리는 이토록 자기 전통을 뒤죽박죽 정리해 놓고 산다. 기회에 한마디하자.
"유홍준 문화재관리청장님, 시간 한번 내시죠. 그 좋다는 '포도일원문' 벼루 한 점 함께 보러 갑시다. 장담할까요?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천하일품입디다."
중앙일보 9.15 [전문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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