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세상] 야나기 무네요시

〈문광훈/ 고려대 아세아연구소 교수·독문학〉

일본에는 조선시대의 민예품(民藝品)이 많고, 그 중심에 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이 있음을 나는 1980년대에 어떤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뒤 이 민예관의 창시자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가 누구인지, ‘민예품’이란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왜 이것들이 일본에 있는지 자문하곤 했다.

그 뒤에도 가끔 이곳이 언급되었다. 지난 7월말 한·일간의 우정을 기념한 음악회가 열린 곳도, 지난해 그 즈음 정명훈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피아노와 비올라를 함께 연주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이 민예관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금 ‘조선 민화(民畵)’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 예술·민중을 사랑한 삶-

박물관에 가기 전 나는 책을 몇 권 구입하여 시간 나는 대로 쉬엄쉬엄 읽었다. 눈에 띈 것은, 그 어디를 펼치더라도 야나기의 글이 독자의 심성에 호소하는 정감어린 것이었고, 이때의 정감적 호소가 흥분된 것이 아니라 차분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선민화의 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을 사랑하고 수집, 기록했던 그의 생활감정이자 삶의 태도로 내게는 여겨졌다. 이 점이 거듭 그의 책을 뒤적이게 했다.

한 지역에 산다고 해도 여기 사는 모두가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여러 불가피한 이유가 있겠지만, 사는 일이 힘들어서 아니면 미처 깨닫지 못하여 그럴 수도 있다. 설령 관심이 있다 해도 그 글이 단순한 분석이나 설명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어렵고, 감성과 논리의 긴장을 잃지 않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이런 긴장도 어떤 목적의식에서 추구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얻어질 때일 것이다. 성심(誠心)은 이 자연스러운 마음의 정서적 표현일 것이다. 야나기의 글을 관통하는 것은 이런 성심 - 조선예술과 민중에 대한 한결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보인다. 그는 ‘조선과 그 예술’에서 이렇게 적는다.

“마음과 그 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그 작품의 원천이 되고 있지 않은가. 작품을 통해서 사람을 보지 않는다면 그 작품을 충분히 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경이는 바로 만든 사람에 대한 경이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인간과 삶에 대한 야나기의 믿음이 다소 관념적으로 생각될 때도 있다. 이것은 그가 조선예술의 ‘내면’이나 ‘비밀’을 강조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정치나 현실에 비해 예술과 종교를 지나치게 우위적으로 파악하는 데서도 보인다. 내면의 심성은 중요하지만 ‘더 밝혀져야 하는 것’이지 신비화되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정치 자체가 불신되어선 안된다. 제국주의의 ‘칼’은 녹여져야 하지만, 그 실행은 정치적 과정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문화를 절절하게 기록-

그렇다고 해도 야나기의 저작은, 무엇보다 그 삶은 상호문화적 이해에 있어 참으로 중대한 궤적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마음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정치가 인정(人情) 위에 자리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검열과 감시가 엄혹했던 시절에 글로써, 강연과 모임을 통해 부단히 실천된 것이었다. 성악가인 아내와 음악회를 개최하여 경복궁 안에 미술관을 세운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런 염원으로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던 식민지 조선의 생활용품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우리 문화의 자연스러움 - 소박함과 담담함, 무욕(無慾)과 비작위성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절절하게 기록한 이는 아마도 달리 없으리라.

야나기 선생을 읽노라면 나는 어느덧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짐을 느낀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아낀 조선자기처럼 그의 심성 또한 여리고 온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문득 그를 뵙고 싶다는, 뵈어 그의 학생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때를 놓친 이 소망은 그가 남긴 글을 읽을 때 조금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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