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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문화산책]지자체 문화회관 양보다 질을
지난 14일 1만2900평 규모에 1600억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이 들어간 성남아트센터가 개관됐다. 하지만 이 아트센터는 개관하자마자 모 신문사와 모종의 약정으로 벌써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아트센터의 특정 공간을 모 신문사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받되, 신문사 측은 아트센터 홍보를 맡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 이는 공간상의 운영·홍보나 기획 인력이 부족한 센터 측의 궁여지책일 수 있다. 어마어마한 하드웨어 건립에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그 안에서 일어나게 될 공연이나 전시 등에 대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딱히 아트센터 측의 이러한 행동을 무어라 할 수도 없다. 이는 비단 성남아트센터 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해 전부터 지방자치제라는 구조 안에서 도·시·구마다 책정된 예산 지출을 위해 아트센터나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작게는 500평에서 크게는 2만평에 다다르는 부지를 선정하고 그 전체를 뒤덮을 만한 거대한 건물을 너도나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덕양문화재단은 상당한 규모의 미술관과 공연장을 덕양구에 개관했다. 그런데 이 문화재단은 2006년 12월 일산아람누리 문화예술회관 준공을 또다시 준비하고 있다. 비교적 성공적인 공간 운영을 하고 있는 덕양문화재단이 동일 성격의 건물을 멀지 않은 곳에 세우고 나면 과연 어떻게 공생해 나갈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전문 인력은 부족하고, 이는 결국 공간을 채워야 할 공연이나 전시의 기획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공간 운영 마비가 오는 악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전국문예회관연합이 지방 문예회관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마켓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문예회관을 건립하는 초기 단계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짓고 보자는 행정적 편리주의에 대한 단기 해결책에 불과한 것이다.
1200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는 천안예술의 전당, 684억원에 건립할 예정인 의왕시 문화예술회관 등 앞으로도 각 지방자치단체는 수백·수천억원대 예산을 들여 문화예술 공간을 지을 방침이다. 이들이 과연 내용과 인력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선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동일 생활권의 몇몇 시들이 각각 커다란 문화예술회관을 갖고 있는 경우다. 이는 건립이 아닌 난립에 가깝다. 덩치만 커다란 문예회관 난립은 제살 깎아 먹기와도 다를 바가 없다. 공연이나 전시 내용의 기획에서도 질적 저하 현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까지 우리는 한국 근대미술관조차 없어 한국문화예술의 견고한 보고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공간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것은 문화예술 창의력 고갈을 조장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작고 알찬 공간도 아니고 경쟁하듯이 크게만 짓는 문화예술회관들의 모습에서 그 옛날 한국 근대 경제사의 복사판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만 하다. 보다 신중한 정부차원의 관리와 지자체 간의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문화예술회관들은 50년 뒤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유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 세계일보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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