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문화로 부흥하는 도시
10여 년 전의 영국 런던은 그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들에게 거리를 지나다가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도 편안히 들어가 앉을 찻집 하나 마땅치 않았던 공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런던은 미술.건축.음식.디자인 등 모든 상위 문화의 향연장으로 변모해 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중충하고 우울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던 왕년의 대제국 수도는 이제 억눌려 있던 저력이 되살아나며 엄청난 속도로 화려하게 탈바꿈해 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영국의 경제 회복이 가져온 가시적인 지표는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문화다. 그중에서도 현대 미술과 건축 분야의 성장은 눈부시다. 영국의 젊은 현대미술은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심 집단으로 성장했고 그 여파는 영국 내에서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의 붐으로 이어졌다. 사실 팝아트의 종주국임에도 불구하고 영국미술과 컨템퍼러리 아트는 서로 거리가 먼 것이었으나 젊은 영국 현대미술의 국외에서의 대성공은 자국 내에서의 현대미술의 부흥까지 견인하게 된 것이다.
5년 전 전 세계가 새로운 밀레니엄 맞이로 들뜬 분위기였을 때 가장 확실한 문화적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선보인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공간적으로 죽어 있던 템스강변을 부활시키는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는 런던의 신을 바꿔 놓았으며 그 중심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 리노베이션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황량한 대형 발전소 건축물을 현대 미술관으로 개조한 영국의 계획 속에는 세계 미술 현장의 새로운 리더가 되려는 야심이 숨어 있었으며 그들의 예측은 제대로 들어맞아 런던은 명실 공히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급부상하였다. 이제 런던은 더 이상 어둡고 음침한 몰락한 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매력 있는 도시로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으며 윤기를 발하는 장소가 되었다. 첨단의 건축 및 새로운 미술과 디자인을 만끽할 수 있는, 곳곳에 힙(hip)한 바와 식당이 속속 문을 여는 공간으로서의 런던은 영국의 국가 이미지마저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 서울의 경우도 며칠 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에 관한 소식이 문화와 도시 발전의 시너지 효과에 관한 많은 생각을 유추시키고 있다. 세계 10위 내 규모로 문을 연 지 사흘 만에 10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들었다는 뉴스는 5년 전 개관한 런던 테이트 모던 신드롬을 연상케 한다. 유물 전시관의 기능뿐 아니라 대규모 공원, 공연장, 서비스 시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상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과거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며 보수적인 기능에서 탈피해 시민이 함께 참여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은 도시민의 생활에 커다란 활력의 장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과천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이 몇 년 안에 곧 도심의 경복궁 옆으로 이전하게 된 사실은 서울이 고부가가치의 문화 도시로 성장하는 데 확실한 상승 효과를 더해 줄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열린 청계천 물길에 한 달 사이 60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렸듯이 시민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장소를 너무도 간절히 원하며, 그 바람 속에 모두가 문화인이 될 수 있는 저력과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민의 그러한 저력과 잠재력에 숨통을 틔워 줄 진정한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도 이제 먼 훗날에나 가능한 희망사항만은 아닌 것 같다.
- 중앙일보 1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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