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유럽의 미술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러시아의 미술을 이해하기란 어쩌면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방대한 영토와 역사만큼이나 층이 넓고 깊은 러시아의 미술사를 짚어 나가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냉전 시대의 종결 전까지는 우리와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를 표방한 국가권의 미술로 관심을 전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8백여 년간의 러시아 미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러시아!>전은 문외한에게는 러시아 미술 감상을 위한 입문서가 되며, 그것에 보다 익숙한 관객에게는 더욱 광범위한 종교적 정치적 예술적 맥락에서 러시아 미술을 바라보고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도록 만드는 전시이다.
<러시아!>전에는 러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다수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며,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250점 이상의 회화 및 입체 작품이 한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어 근간 개최된 러시아 관련 미술전으로서는 최대 규모가 된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러시아의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전을 몇 차례 기획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러시아 미술에 대해 총체적인 역사적 접근을 하기는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구겐하임 미술관의 나선형 전시실은 이번 전시를 위한 적소가 된다. 나선형의 하층부로부터 시작하여 연대기적인 방식으로 꼭대기까지 연결되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전시는, 13-17세기 중세 아이콘의 시대, 18세기 피터 대제 및 케서린 대제 시대의 러시아 미술 및 황실 콜렉션, 19세기 아카데미 미술과 낭만주의 및 비판적 사실주의, 20세기 초 세르게이 스슈킨 및 이반 모로조프 콜렉션과 역사적 아방가르드, 1930-60년대 소비에트 시기, 1970년 이후의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등 시대별로 구분되어 역사책의 각 장을 넘기는 느낌으로 무리 없이 이어진다.
가장 흥미로운 시대 가운데의 하나는 새롭고 독창적인 장르가 확립된 19세기로서, 주제와 양식 면에서 다양하고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다수 출현한 시기이다. 초상화와 풍경화가 성행한 19세기 전반과, 신화적 주제 대신 당대성이 있는 주제와 사회적 주제가 선호되는 19세기 후반은 대조적이면서도 공통적으로는 예술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명백히 표출되고 있다. 특히 ‘방랑자' 그룹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향은 사실주의로서 국가적인 의식의 미술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미술을 국가적인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는 주요한 단초가 된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믿으며 1870년에 창립된 ’방랑자‘ 그룹은 1757년에 설립된 미술 아카데미 미술을 거부하고 순회전 개최를 통해 보다 폭넓게 대중에게 호소력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미술가 연합이었다. 일리아 레핀, 이반 크람스코이, 니콜라이 게 등의 화가는 낭만주의 초상화로부터 농민 생활의 재현한 장르화, 역사화, 성화,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사회에 대한 비평을 수행하였다.

<러시아!>전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13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러시아 미술과 더불어 전시된 서유럽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다. 18세기 미술 부분에서 보여지는 걸작들은 피터 대제, 캐서린 대제, 니콜라스 1세가 18-19세기에 이태리,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각국에서 수집한 조각과 회화로서 이후 니콜라스 1세가 1852년에 설립한 황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다. 한편 20세기 거상 세르게이 스슈킨(1854-1936)과 이반 모로조프(1871-1921)가 수집한 콜렉션은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파, 큐비즘 등 20세기의 명화를 포함하여, 황실 및 개인 소장품의 러시아 현대 미술에 대한 영향력과 콜렉터의 안목을 가늠케 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의 미술은 아마도 20세기 초 일군의 혁신적 미술가 바실리 칸딘스키, 알렉산더 로드체코,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의 이름을 통해서일 테지만 그것은 러시아 미술의 극히 부분적인 단편일 뿐이며, 러시아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사회 속에서 독특한 상징체계가 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국가적 정체성을 표상하는 도구가 되는 러시아 정교 미술의 도상(icon), 바로 이번 전시의 시작 지점부터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로 구분되는 소비에트 양식조차 한가지로 일반화할 수 없는 다양성과 복합성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러시아!>전의 기획 의도이다. 국가적 전통과 이념, 그리고 서구의 영향이 다각도로 만나는 교류의 현장을 <러시아!>전에서 보고, 우리의 미술이 있는 가칭 <한국>전은 어떻게 서술하고 제시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