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미술 중심을 꿈꾸며 - 2002년 미술계 결산


최열(미술평론가 /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 


  세기가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혁신되기를 바란 게 어디 나뿐이었을까. 누구나 그랬
을 게다. 빛살처럼 빠르게 두 해가 흘러갔다. 혁신이란 이름에 딱맞는 사건은 찾아오
지 않았다. 모든 것이 20세기의 기나긴 밤처럼 꼭같다. 지난 일백년 동안 쌓이고 묵힌 
더러운 때자욱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온세상을 뒤덮고 있는 느낌은 비단 정치와 경제 쪽
의 추악함 탓만은 아닐 것이다.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신식민지를 겪어오면서 체험한 
그 숱한 악마의 광기들이 여전히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래, 참된 21세기는 언제 
올 것인가. 


  새로운 세기의 미술은 그 형식과 내용의 새로움에 대한 추궁으로 가능할 것이다. 작
품에서만이 아니라 미술을 둘러싼 제도와 비평을 아우르는 이른바 미술문화의 새로움
에 대한 추궁 말이다. 논객들의 추궁도 있을 것이고 기획자들의 실천도 있을 것이며 정
책 담당자들의 지원도 있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세기를 탐색하는 실험으로 
자신을 태워나가고 있고 큐레이터들 또한 전력을 기울여 방향을 가름하고 있다. 2002년
에도 그러한 노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또렸해 보이지 않는다. 많은 기획과 구상, 실천
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미술문화 환경의 변화 
 
  1990년대에 이르러 문화산업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예술경영에 관
한 인식이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비단 관료만이 아니라 미술인 자신의 얇고 가벼운 수
준의 이해로 말미암아 문화산업은 엉뚱하게도 순수예술을 배제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
고 심지어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따위로 날을 지샐 수 밖에 없었다. 문화특
구 정책도 궁궐이나 인사동 지역의 미술문화 보존과 개발의 조화로운 전략 접근이 아니
라 관광수익 증대의 관점으로 실행함에 따라 인상깊은 문화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화랑, 미술관, 궁궐을 잇는 미술문화의 동맥으로 기능하는 기존의 미술
관순회버스는 뒷전으로 팽개치고 서울시티투어버스 운행과 같은 엉뚱한 정책으로 부실
한 버스 운행노선을 만들어 시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그같은 정책 결정자들의 지향이 결국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지원은 커녕 가능한 예
산지원의 폭을 줄여 나가는 방향 또는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의 미술관이야 
이미 오래전에 겪은 일이지만 지난해 일본의 국립 박물관, 미술관이 독립행정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수익증대를 위한 사업방향을 강화하고 있다. 독립성 보장도 끼워져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을 줄이고 미술관 자체의 수익과 협찬의 증대를 위한 경
영기법 도입이 그 핵심이다. 시행 일년이 넘어가면서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여기에 대해 찬반 양론이 비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웃이 겪고 있는 변화에
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낯설어 보인다. 한 세기를 넘기고 있는 일본과 유럽 미술관 역사
에 비해 우리는 해방 뒤부터 따져도 반세기의 경험 밖에 없다. 게다가 군사독재 시절 
미술관은 관료들의 무대였으므로 수집, 조사, 연구는 뒷전이었고 예산과 사업 또한 언
제나 경직된 상태로 운영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뿐 아니다. 운영에 있어서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제법 사라졌다고 믿었던 
관료들의 무지와 미술 사업에의 개입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흔히 중앙정부 문화관료
들의 의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자치단체 문화관료들은 무지한 수준을 넘
어 서고 있다. 무지하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할 터이지만 불손하기 그지 없다. 그 사례
를 몇가지 들어보자. 먼저 중앙정부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자율성과 독
립성이 여전히 제약받고 있다. 관료들이 예산과 기획, 사업의 권한을 선심쓰듯 큐레이
터들에게 나눠주는 식이었음은 국장, 과장의 발령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으며, 올 해 
일어난 자료실 전문인력의 사퇴 사건도 그와같은 현실을 반영하는 지극히 상징적인 사
건일뿐이다.
 
  올 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옛 대법원 건물을 개조, 입주함으로써 겉모습에 대한 찬탄
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개관기념전을 열자 마자 관료들은 즉시 감사의 칼을 빼들어 
혼신을 다했던 큐레이터들을 향해 휘둘러댔다. 게다가 개관과 함께 약속했던 기증품전
시관 마련을 시행치 않아 기증문화를 북돋우기는 커녕 기증자의 뜻을 짓밟는 무례함을 
저질렀다. 내세우는 이유가 지난 시절 반정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어떻게 서울시립미
술관에 상설 전시하느냐는 것이란다. 이것이 큐레이터의 뜻이 아니라 서울시 문화과 관
료의 뜻이었다고 하니 경이로운 일이다. 기증자가 시장과 한 약속을 뒤집는 하급 문화 
관료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도 그러하고 전문가인 관장과 큐레이터들의 의견을 짓밟
아도 아무런 문제조차 없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문화관료들이 전문가에 비해 우월한 
권위의식을 뽐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궁금하다.  


  이와같은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박물관, 미술관을 향한 문화관료들의 의식은 지극
히 참담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하는 국가경제의 규모에 따라 미술관, 화
랑의 증가는 괄목할만하다. 한국민속촌미술관, 김흥수미술관, 박수근미술관이 줄줄이 
개관했고 대림미술관이 사진전문 미술관으로 재탄생했으며, 일민미술관의 재탄생도 이
어졌고 연말에는 김종영미술관이 개관한다. 즐비한 미술관 출범은 행복한 일이지만 걱
정이 앞서는 것은 비단 문화관료들의 부끄러운 초상에서만이 아니다. 이렇게 개관하는 
미술관들이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면서 언제까지 아름다운 전통을 쌓아 올려갈 것인지 
불안해서다. 그래서 간송40주기전을 개최한 간송미술관이며,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호
암미술관의 역사가 새삼 커보이는 것이다. 


  큐레이터들은 어떤가. 참으로 역사가 짧아 한국의 큐레이터들이 무엇을 특색으로 하
는지 한마디로 말 할 수도 없고, 올 해도 어떤 집약된 정체성을 보인적도 없다. 한국
의 큐레이터들은 이제 자신의 역사를 써나가기 위한 첫걸음을 떼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업 큐레이터라고 해봐야 토탈미술관이 큐레이터 제도를 채택했던 때부터로 치면 십년
이 채 못된다. 이제 많은 큐레이터들이 배출되고 있다. 지난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모
본삼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하듯 만들어 내는 각종 국제미술행사들로 말미암아 
큐레이터는 눈부신 직업으로 뛰어올랐다. 그 과정에서 짙은 그늘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러나 21세기 한국미술에서 큐레이터는 절대존재로 자라날 것이다. 다만 제도와 환경의 
열악함을 끝내 견뎌내는 자만이 살아 남겠지만 말이다. 


  화상들은 2002년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처절하지도 않았다. 이미 만
성이 되어버린 불황은 현실 순응의 타성을 길러주었고 또 일부 적극성을 지닌 화상은 
미술사업을 다각화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가나아트갤러리가 아트상품 및 미술
경매를 상당 수준으로 올려놓았는데 현대화랑, 선화랑을 비롯해 몇몇이 여기에 발을 내
딛기 시작했다. 불황이 낳은 타개전략이지만 21세기 미술문화가 펼쳐나가야 할 필연의 
모습으로 보인다. 


  화랑들이 주관하는 마니프, 청담미술제, 국제아트페어, 화랑미술제가 있으나 미술시
장의 활성화를 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최하는 화상이나 참가하는 작가들 모두 투지
를 보이지만 정작 구매자들은 발길을 주지 않고 있어서다. 불황이건 활황이건 작가들
의 삶은 변화가 없어보인다. 언제나 다른 직업에 기생해 자신의 창작을 보장받는 관행
은 다름이 없으므로 근본 처방은 국가와 사회의 문화전략과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운
동이 요청된다 할 것이다. 작가와 큐레이터, 평론가, 대학과 화랑이 미술문화 체질을 
강화하는 구상과 기획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문예진흥원과 각 지자체가 폐
교활용 프로그램을 추진한 적이 있었고 또 올해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창동스튜디오를, 
광주시립미술관이 창작공방을, 쌈지스페이스가 쌈지스튜디오를, 영은미술관이 창작스튜
디오를, 가나화랑이 가나아뜰리에를 개설하여 작가들이 입주했다. 그러나 이같은 프로
그램들의 성공 여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실제로 작가의 창작 여건은 작품의 판매 여
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공사립 미술관의 작품 구매 예산과 기업의 작품구입에 따
른 세제 혜택같은 보다 강화된 정책결정이 요청된다 하겠다. 
  


화려한 국제전
 
  올해들어 여러곳에서 국제미술행사가 열렸다. 광주비엔날레는 말 할 것도 없고 부산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대구청년비엔날레, 대전 아시아국제미술전, 아시아포토비엔
날레, 국제포스터비엔날레, 대구아트엑스포 가 열려 얼핏 미술계는 빈곤함을 벗어나 화
려함을 구가하는듯이 보인다. 거두고 있는 성과들이야 천차만별이므로 쉽사리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으로서 미술을 지속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현란한 작품들
을 내놓는 작가들과 그 작가의 작품을 모아 설치하는 기획자들의 노력은 감춰져 있다. 
물론 적자생존의 시장논리로 역량에 따라 걸러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순리이므로 
이에 순응한다면 그 뿐이지만 그늘을 없애는 혁신까지 포기해선 안될 것이다. 첫 전시
에서 90억원을 쓴 서울시의 미디어시티서울이 올 해 2회 때 10억원이 안되는 예산으로 
해결했다고 관대해지거나 또 수십억의 예산을 쓴 광주비엔날레에 비해 저예산 비엔날레
를 성취한 행사주최쪽이 자랑스러워한다면 앞으로는 저예산의 저급한 국제행사가 정착
될지도 모른다. 저예산 행사란 거의가 작가와 기획자의 헌신을 요구한다. 문제는 행사
의 목적과 의의가 헌신성을 발휘할만한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그 헌신의 정도가 달라진
다. 대체 왜 행사주최자들이 작가와 기획자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일까. 또 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일까. 게다가 한번이면 모르지만 되풀이될 때 어느덧 저예산 행사는 국제미
술의 쓰레기터로 전락해 갈 것이다. 


  올해 열린 숱한 국제규모의 비엔날레들을 가리켜 비엔날레 천국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은 비엔날레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숫자를 줄여나갈 일이다. 
비엔날레 천국이란 가짓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수준의 비엔날레를 단 한가지
만 개최했을 때 부여해줄 이름이다. 
  국제 비엔날레와 더불어 동북아시아지역을 아우르는 전시회가 줄을 이었다. 연초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의 한중일 수묵화전 수묵의 향기 수묵의 조형전을 비롯해 광주시립
의 중국현대미술전, 덕수궁미술관의 중국5대가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란전통회
화전, 모란미술관에서 열린 몽골현대미술전,  경기도박물관의 동아시아삼국 한중일미술
비교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일현대미술전, 그리고 아트사이드의 북한국적 화가 손국
연 개인전과 워커힐에서 열린 북한미술전은 한국을 둘러싼 여러 지역 국가들을 아우르
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련의 전람회는 한국이 동북아시아 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를 가능성을 은밀히 암시하
고 있는듯 하다. 얼핏 보아서는 감추어져 있어 보이지 않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단편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서두를 일
은 아니지만 새벽 동이 틀 때 계획을 세우듯 지금 그와같은 동북아시아 지역 미술 행사
를 기획할 때부터 치밀한 전략을 내면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미술의 중
심을 향한 기획과 구상을 갖는다는 것은 21세기 미술을 주도할 역량 마련의 거점이 아
닐까. 


동북아시아 미술의 중심
 
  수묵의 향기 수묵의 조형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중일 수묵화 학술세미나 
때 발표자로 나선 중국의 장리천 교수는 중국화에 대해 동양계열의 대표임을 넘치는 자
부심으로 내세우면서 동방정신과 민족혼을 영원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본
의 요네쿠라 마모루 교수는 과거 중국을 부친으로, 한국을 모친으로 생성된 일본 수묵
화이지만 그러나 근대 이후 미술문화는 유럽 대 일본의 대등관계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주장하고 이어 한자문화권이라는 공통성을 바탕삼아 삼국의 문화동맹을 이룩하자고 당
당하게 나섰다.
 
  또 지난해 12월, 전남대에서 열린 아시아 거대예술담론은 가능한가?라는 한중일 삼
국 학술세미나 때에도 일본의 다테하타 아키라는 동서의 통로로서 중성적인 아시아 미
술을 제창하였는데 마모루 교수가 추구하고 있는 바 '동서양을 관통하는 일본인의 
눈'을 지니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제창을 할 
수 있는 높이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미술의 전략을 갖
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말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획득할만하다고 
믿는 일본미술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같은 자신감은 중국의 경우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중국의 주치는 아시아예술은 자기 언어가 없다고 진단하고 지금부터 예술
사를 다시 쓸 것과 더불어 앞으로 거시 안목을 갖고 보편성을 획득해 나가자고 제창했
으며 또한 중국인 장칭은 앞으로 10년 안에 아시아 신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힘주어 주
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장석원 교수는 아시아의 새로운 기류를 거대담론 형태로 대두시
킬 것과 서구에 대등한 세계화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제창했고 이에 대
해 질의자로 나선 한국의 박정기 교수는 서구권과의 헤게모니를 의식한 반모더니즘의 
중심 형성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는데 따지고 보면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부단히 아시아미술의 중심을 구상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쪽의 
반응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수동적이다.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서구에 너무 오
랫동안 주눅이 들어서 일까. 탈민족, 탈식민, 탈근대를 주장하면서 서구화를 추진하고 
또 서구의 눈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오랜 습관 때문에 감히 민족 따위를 주장
할 처지가 아니라고 믿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열린 일한미학연구회와 동방미학회의 한중일 미학심포지엄과 대만에서 열
린 동아시아회화사 국제학술대회에서 서구중심주의 문제가 미술사학의 주요 과제였거니
와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제국과 식민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
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논객들은 너무나도 안일하고 나태한 것이었다. 혹여 민족이
나 국가를 앞세우면 낙후된 전근대적 인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아니면 봉건시대나 있
을 국수주의자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가장 참혹한 
식민지 체험을 했고 또한 서구로부터 최악의 신식민 경험을 해 온 한국의 지식인들이 
왜 그렇게 두려워 하는지 나로선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의연하고 당당한 공동체 일원
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히 내세울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성찰하며 새 시대에 
알맞는 정신을 추궁하는 동북아시아 미술중심 기획자의 태도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근대와 미술사 다시쓰기
 
  그와같은 문제의식을 내면에 깔고 보면 올 해 근대시기를 되돌아 보는 전람회가 눈
에 들어온다. 호암미술관의 격조와 해학전, 동산방과 학고재에서 열린 완당과 완당바람
전, 간송미술관의 추사명품전을 비롯해 이상범, 유영국, 도상봉 그리고 전혁림, 최영
림, 이항성, 류경채의 회고전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거대 줄기를 이루었다. 미래의 전
망을 위한 과거의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기획자들의 진지함이 돋보이는 전시들
이었다. 세기가 바뀌고 새로운 미술중심을 구상하기 위한 탐색이 시대의 요청임을 깨우
친 기획자들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근대와 현대의 전환기에 자리잡고 있는 기획전과 작가들의 회고전은 대단히 인상깊
은 특색들을 보여주었다. 봉건성을 극복하고 현대성을 획득해 나가는 기나긴 발자취를 
보여주는 격조와 해학전, 처음부터 끝까지 추상으로 일관한 유영국, 구상과 추상을 넘
나든 류경채와 독자한 개성을 일관되게 추궁해 나간 이상범, 도상봉을 비롯한 이들, 봉
건시대의 끝과 근대의 시작 지점에 자리잡은 김정희 전람회는 한국미술사의 정체성만
이 아니라 두 세기 동안 쌓아온 근대미술의 두께가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
었다. 기획자들은 격정의 시대를 살아남은 저 미술가들의 열정이 21세기 한국미술의 미
래를 열어줄 터전임을 아로새기고 싶어했던 것이겠다.  


  근대시기 회고전들은 한국미술사학계에 과제를 남겨준 커다란 계기였다. 그러나 정
작 사학자와 비평가들은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부터 시작된 근대시기 전람회
들에도 불구하고 근대와 현대 기점과 같은 과제를 부각시키는 학술발표회 하나 조직하
지 못했으며, 쟁점을 만드는 노력도 외면했다. 세기가 바뀌면서 자본주의세계체제로의 
재편, 동북아시아 미술권의 미래와 같은 현실 앞에 미술사학 또한 근현대 기점론의 새
로운 조정, 서구와 동아시아 미술의 관계, 동북아 미술 정체성 탐구와 같은 여러가지 
과제가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듯 하다.  


  이러한 흐름과 달리 정체성을 탐색하는 노력이 있었다. 여성성은 20세기말 한국미술
의 주요한 주제로 부각되어 왔다.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열린 또 다른 미술사:여성성의 
재현전과 한일근현대미술과 여성 주제의 학술대회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남성과 이
민족 일제에 의한 이중적 억압을 받은 한국의 여성과 제국주의와 남성에 의한 억압을 
받아온 일본 여성을 전제로 하여 때로는 현모양처상으로 때로는 미인이나 나체상에 대
한 분석이 이뤄졌다. 특히 근대 권력과 남성의 소유 및 지배라는 욕망의 표상으로서 20
세기 동북아시아 여성성에 대한 헤아림을 토대로 주변화된 여성주체를 복원해 나가야 
한다는 판단은 기존 미술사를 해체하고 개입하여 재서술하는 할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
서 새로운 미술사 서술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홍익대 일대에서 열린 한국실험예술제-한국퍼포먼스 30년전과 한원미술관이 주관하
는 6-70년대 아방가르드에 대한 학술세미나는 실험과 전위의 발자취를 재정리하고 또 
현대미술 다시쓰기라는 의욕이 담긴 것으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장기 연속기획전인 
일련의 근현대미술사 정리기획전과 더불어 21세기 미술사 재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이라 하겠다. 관련하여 불교문화산업기획단이 주최한 근현대불교미술전 때 새로 발굴
한 김복진의 <관음보살좌상>(충남 예산 정혜사)과 최근 발견한 채용신의 <부부초상> 그
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개한 근대 일본화 소장품전은 빈약한 근대시기 미술사를 풍
부하게 해 줄 사건이었다. 


  2002년 미술계의 또 다른 특색은 사진 장르의 미술권 융합이라 하겠다. 사진전문미술
관으로 대림미술관이 재개관한 일이며, 호암미술관을 포함한 몇 곳에서 미국, 독일, 프
랑스 사진전이 연이어 열렸고 세계정상급 사진작가들을 초대한 가나아트센터의 제2회 
사진영상페스티벌, 동북아시아 4개국 26명의 작가를 초대한 갤러리라메르의 아시아포토
비엔날레는 사진의 예술성이 순수미술과 대등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고 동시에 미술의 해체와 장르의 융합을 향한 새로운 미술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유영국 별세, 모더니즘의 종언
 
  출판분야도 상당한 성장을 보여주었는데 김정희 전람회와 함께 <추사와 그의 시대>, 
<완당평전>이 연이어 나왔고 특히 광범위한 대중성을 겨냥한 단행본들이 미술출판시장
을 휩쓸고 있는 터에 윤범모의 <미술본색>은 미술계의 구조를 폭로하는 것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열화당이 출판의 시장성을 무시하고 <근원 김용준 전집>을 완간시키는 뚝
심을 발휘하여 미술출판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놓기도 했다. 
  끝으로 조요한, 박고석, 김상유, 손수광이 세상을 떠났고 유영국도 세상을 등졌다.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작가 개인의 창작이 중단됨을 뜻하기도 하지만 때로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유영국의 서거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종언
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 개인전이 되어버린 지난 가을 가나아트센터의 회고전은 20
세기 한국 모더니즘을 반추하기에 넉넉한 것이었다. 또한 조요한의 타계는 원로 미학자
의 손실일뿐만 아니라 서구미학을 이식해 온 미학자가 <한국미의 조명>이란 책에서 보
여주는 바와같이 한국미의 본질적 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왔던 역사의 중단이란 의미
를 지니는 것이다. 


  혼란스럽게 보이던 것들도 어느덧 가지런한 질서를 지닌 운동임을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숱한 실험의 난무, 다양한 주장들이 지배하는 미술계에도 언제나 시간이 흐르면
서 가치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가닥이 잡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
러 미술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고 심지어 미술의 해체를 향한 도전이 지속되고 있다. 근
대적 미술개념, 근대 미술제도의 해체를 향한 기획과 전략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
는 중에서도 그러나 미술은 지속가능한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은 움직이고 있고 인사동은 왕성한 식욕으로 그 숱한 전람회를 소화해 내고 있
다. 임권택 감독은 장승업을 영화로 만들어 미술가의 신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보
여주고 있으니 여전히 미술은 새로운 세기를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같다. 혁신의 
미래를 향해서 말이다. 


                          -  문화예술 2002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