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문화'





러시아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했던 광주출신의 발레리나 문 호씨는 러시아인들의 예술
적 자존심을 이렇게 전했다. 호텔 청소부와 동네 할머니들도 주역의 이름을 줄줄 외우
고 발레를 보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의 화제거리가 문화와
예술이라고도 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포위되었던 상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쥐를 잡아 연명하면
서도 므라빈스키의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했던 민족이니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니다. 국가
적 자존심이 허물어져버린 지금도 차이코프스키의 로망스 `다만 그리움을 아는 이만
이''를 들으며 `음악 수도''의 자긍심을 되뇌인다. 추운 겨울날에도 `예술광장 축
제''를 계속하면서 화려했던 시절을 회억(回憶)하기도 한다.
러시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에게 그런 자긍심이 있는가를 묻기 위함이다. 세계적
미술축제가 네 번째 열리고 있는 지금, 광주는 `비엔날레 문화''라는 것을 갖고 있는
가. 개막 당시의 혼란과 어수선함은 `미션 임파서블''이란 평가로 대신키로 하고 관람
자들은 무엇이 변했는가를 묻고 싶다.

작품은 조용히 멈춰서 `성찰''을 권유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달려 다니며 속도를 즐긴
다. 전시장에 롤러스케이트가 등장하고 곳곳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댄다. `전시장
의 훌리건''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멈춤''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무
어라 탓할 것인가. 문제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시장을 찾은 `문화인들''의 잘못된 자
식사랑이다. `문화라는 이름의 야만''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 그들은 집
으로 돌아가 광주비엔날레를 얘기할 것이고 문화시민임을 자랑할 것이다.
참여 작가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비엔날레가 미술에 대한 새로운 발언임을 인정하면
서도 일부는 지나치게 아이디어 위주로 흘러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예술
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아이들이 `미술=장난''이라고 단정해버릴까 걱정이다. `미술이
란 이름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잖다. 예술에 있어 고정관념의 파괴
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삶의 진정성''을 외면한 작품은 관람자에게 아무
런 감동도 전하지 못한다.
`비엔날레 도시''의 작가들은 어떤가. 비엔날레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자신을 지켜
줄 그 무엇을 찾았는가. 혹여 `남의 잔치''라고 폄훼하면서 운영자나 큐레이터들을 비
난하고 참여작가들을 매도한 적은 없는지 반성할 일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없는 예술
의 도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 페테르부르크에는 차이코프스키가, 프랑크푸
르트에는 괴테가 있었고 액스 앙 프로방스에는 세잔느가, 그리고 빈에는 슈베르트가 있
었지 않은가.
비엔날레가 지금처럼 이벤트성으로 굴러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수입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자위하는 것은 광주를 세계적 예향으
로 발돋움 시키겠다는 웅대한 뜻이 있어서다. 따라서 지역 작가들은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로 진출해야 하고 시민들은 문화적 훈련을 통해 광주지역 특유의 `비엔날레 문
화''를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엔날레 문화는 이른바 비문화적 요소들을 모조리 털어 내버린 신사의 문화다. 이는
공급자나 기획자, 감상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표절을 비롯한
잘못된 문화적 관행들을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도 배척해야 하며 잘못
된 제자사랑도 극복되어야 한다. `주례사''로 포장된 거창한 개막식이나 거들먹거리는
문화도 허용될 수 없다.
또한 비엔날레 문화는 작은 의미의 문화가 아니다. 운동경기 관람에서부터 교통질서,
예약, 친절한 시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양식을 망라한다. 예술의 나라, 예술
의 도시들은 나름대로 이런 문화적 훈련을 통해 오늘의 위상이 세워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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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도 `스타감독''''으로

광주비엔날레가 2002 한일월드컵 열기 속에서 조용히 막을 내렸다. 겉으로 보아서는
뜨거운 관심도, 이슈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대로 성공한 대회였다고 결론지어진 모
양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는 주로 주최측에서 나온 것이어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
다. 그렇지만 반박할 만큼의 논리를 갖고 있거나 그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
다 보니 그렇게 정리될 듯하다.
올해의 평가도 지난 대회와 대동소이하다. 전시회는 그런대로 수준급이었는데 행사운
영과 홍보는 미숙했다는 것이다. 전시팀과 지원팀의 자잘한 마찰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전시팀과 지원팀이 최선을 다했지만
해마다 비슷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 것은 광주비엔날레가 시민적 기대를 채워주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4회 비엔날레는 전시회에 `대안 공간''을 끌어들였다거나 `탈 서구화'' 말고 무엇을
평가해야할까.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데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감동의 여
진''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유료관
객으로 보면 1회 대회의 5분의1 수준이고 2년 전에 비해서도 70%밖에 되지 않는다. 물
론 예술행사를 관람객으로 평가하는 것은 비문화적이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고사
(枯死)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재단 측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5회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임에 매달려 있
다. 예술감독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거기서 논의하겠다는 것인데 그들이 비엔날레 예술
감독을 선임할 수 있을 만큼의 안목과 식견을 갖고 있으며, 국제적 흐름을 얼마나 정확
히 읽어내고 있는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아 예술감독 선
임은 곧 전시회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기에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
서 이번 전시회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
이다.
예술감독 선임에 앞서 광주비엔날레의 스타일을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속 실험
성을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유명작가 중심 또는 청·장년이 조화를 이루도록 할 것인
지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순서다. 가능하다면 광주비엔날레
도 5회를 맞는 만큼 국제적인 스타급 예술감독을 선임, 지구촌 미술인들의 관심을 끌어
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스타 뒤에는 언제나 많은 팬들이 따른다. 미술판도 마찬가지다. 미술판의 `히딩
크''를 선임할 수 있다면 광주비엔날레도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독일의 카
스퍼 쾨니히, 스위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샹하이 비엔날레 예술감독), 아프리카 대
륙을 대표하는 오쿠이 엔웨저, 프랑스 니콜라 부리오(11회 카셀 됴큐멘타 예술감독),
남미의 파울로 허켄호프(상파울루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들 수 있다. 여성으로서는 네
덜란드의 사스키아 보스(암스테르담 드 아펠 디렉터), 스페인 로자 마르티네즈(이스탄
불 비엔날레 큐레이터), 오스트리아 마리아 린드, 독일 우테 메타 바우어 등도 스타들
이다. 지금까지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커미셔너 가운데도 스타가 있다.
이들 가운데 우리의 정신에 맞는 사람을 예술감독으로 뽑는 것도 바람직하다. 전시회
구성에서부터 큐레이터들이 참여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
러 `보통의 미술애호가들''을 위한 특별전을 하나쯤 여는 것도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
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떠나지만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몸은 떠나지
만 애정은 그대로 담고 간다는 얘기다. 이번 비엔날레를 이끌었던 사람들도 백서(白
書) 하나쯤 만들어 놓고 떠나 있다가 혹시 물어오거든 애정으로 답하면 된다. 다음 사
람들에게도 `자유''를 주라는 것이다.

광주일보 2002.12.04 지형원 논설위원 /hwj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