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문화정책에 바란다
최열(미술평론가)
5년전 집권하자 곧장 그린벨트 해제를 시작하는 김대중정부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새
롭다. 또 정부는 문화예산을 늘렸지만 그게 문화산업 진흥이라고 해서 순수예술분야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던 기억도 씁쓸하다. 그뿐이 아니다. 놀랍게도 문예진흥기금 모
금을 폐지해버린 일은 김대중정부가 저지른 잘못된 문화정책의 상징이다. 군사독재정권
이 만든 제도라서 폐지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린벨트와 문예진흥기금 모금은 오히려 강
화하고 장려해야할 정책아니던가. 기껏 덕수궁 석조전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만
든 일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내가 지지했던 정부라서 그런지 더더욱 서글픈 일이다.
다시 내가 지지한 노무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희망을 말하려니 답답함이 앞서는데 이유
는 아마 관료들의 무지가 먼저 떠오르는 때문이겠다. 무지하니 겸손하기라도 했으면 좋
겠는데 이건 거꾸로 예술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가 하늘을 찌른다. 게다가 서푼짜
리 권력을 과시하며 부패의 썩은 내음이 진동하니 중앙정부 문화정책이 제아무리 훌륭
하다 한들 어디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말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신축개관 과정에서 보여
준 관료들의 제몫챙기기와 전문학예사들에 대한 감사 따위 칼날 휘두르기, 기증작품 약
정을 존경하긴 커녕 헌신짝 다루듯 내치는 반문화 책동 따위는 지방자치단체 문화관료
의 형편없는 수준을 웅변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새정부는 가장 먼저 문화관련 종사 공무원 임용 및 재임시 특별프로그램을 시
행해야 할 것 같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문화국, 문화과, 문화계가 있다. 군청부터 시청
까지 헤아려 보면 전국적으로 문화부서 공무원들 숫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이들을 상대로 교육, 연수를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지에서 벗어나
야 하고 그래서 종사 전문가에 대한 존경심을 아울러 가질 터인데 그게 목적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문화예술의 소중함을 키울 터이고 자신이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이 어떻
게 이뤄져야 문화예술 발전, 진흥될 수 있을지 깨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별 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지역문화예술공공재단
설립이다. 재단 설립기금은 지역 기업이 출연하고 지역 자치단체가 관리하되 운영은 민
간전문인으로 조직된 위원회가 맡는 것이다. 재단은 지역 문화예술 정책을 심의하고 평
가한다. 이같은 기구는 미술관, 박물관은 물론 환경조형물이나 공공기관 소장 미술품
관리운영 그리고 공연장, 극단 및 예술관련 학술행위와 같은 숱한 문화예술 집단과 행
위를 대상으로 포괄한다. 문예진흥원이나 학술진흥재단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위원회는 예술의전당이나 국립 박물관, 시립미술관은 물론 지자체 문화
원까지 대상으로 삼아 그 활동을 평가하고 지원을 결정하며 또 지원한 사업에 대해 엄
격한 평가를 끝까지 수행함으로써 낭비가 없도록 한다.
국립 미술관, 시립 미술관 따위 관장을 임용함에 대학입시 치르듯 희망자 본인이 원
서를 제출하도록 하여 선임하는 방식은 신기한 일이다. 선임 과정에서 공무원이 끼어들
어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관장의 직급서열을 행정직 국장 따위보다 낮춰
놓고 국장 지휘, 결재를 받게끔 하고 있다. 놀랍고 당황스런 일이다. 이와같은 일이 다
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공공 재단과 위원회에 부여할 가장 커다란 임무 가운데 하나는
문화기관 기관장 인사권한의 행사여야 하겠다.
새정부는 문화공무원 프로그램을 즉각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재단과 위원회 설립
은 법률제정을 통해 시행해야 할 것이므로 광범한 논의를 거쳐 노무현 대통령 임기 안
에 시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러한 두 가지 일이 이룩되면 새정부의 문화
예산 2% 확충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예술활동 지원을 개별화하지 않고 재단
에 기부함으로써 집중과 선택의 원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국민세금에 의존
도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문화특구 정책을 광범위하게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
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서울 인사동을 문화특구로 지정하는 데 지지부진 해왔고 경복궁
을 비롯한 서울 궁궐 지역 일대를 문화특구로 지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왔다. 결국 덕
수궁 터에 고층의 미국인 숙소를 짓겠다는 계획이 당당하게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화특구 지정을 서둘렀다면 감히 엄두나 냈겠는가 말이다. 문화재 파괴도 그런 한계에
서 비롯되는 것인데 석굴암 모형 건축도 그런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특정한 건축가에
게 고건축 복원이니 석굴암 모형 따위 사업을 집중 하청했다고 한다. 잘 되더라도 문제
지만 숱하게 망가뜨리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다. 노무현 정부도 과오르 되풀이해서는 안
될 터인데 어쩌면 그 하청 건축가가 새정부 지지운동을 열심히 하여 중용될지도 모른다
고 한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과오는 비단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간동 국군병원과 기무사 터를 미술관으로 사
용하자는 계획이 나왔음에도 지지부진이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정부에게 청와대 일대
를 미술관과 극장 및 도서관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마침 대전권에 행정수도 건설
을 공약으로 내놓았으니 대통령 집무실이나 살집도 아예 처음부터 따로 마련하고 김대
중 대통령이 퇴거함과 동시에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가길 바란다.
흔히 여러 풍수학자들이 터가 좋지 않아 역대 총독이나 역대 대통령의 끝이 않좋다고
들 하는데 풍수를 믿건 안믿건 그랬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청
와대 입주를 하지 않고 곧장 미술관으로 내놓으면 좋을 것이다. 그랬을 때 북한산 일대
의 자연공원과 궁궐 및 미술관이 장대한 규모의 문화특구로 명실상부한 구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울에 문화의 향기를 누릴 지역이 어디있는가. 시골에서 올라
왔건 해외에서 왔건 관광객들이 느긋하고 여유롭게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남산도, 한강도, 놀이공원도 모두 시설물 이용료 중심으로 꾸며져
돈없으면 메마르고 빡빡하기 이를데 없을 뿐이다.
그리고 새정부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관련 규정을 폐지하길 바란다. 지난날 이
법과 해당 조항은 미술 창작의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상당
수 미술인들이 사상범으로 몰려 투옥되었고 또는 고문도 당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
령이 집권한 나라이므로 이러한 악법을 폐지하는 일은 하나의 사명일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21세기 동북아시아중심 국가의 미술문화를 꽃피울 정책이다. 사회주의 노선을
유지하는 중국과 북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일본과 남한이 공존하는
동북아시아에서 문화 중심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체제를 제약하는 제도를 개혁해
야 할 것이고 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화적 의식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군주들은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고 싶어한다. 그런 시대는 거의 문예도 부흥하
는 법인데 노무현 정부가 그런 문예부흥시대를 열어가길 희망한다. 문예부흥시대는 문
화적으로 도서 출판문화가 만개하는 시대다. 그래서 새정부는 고전국역사업에 집중 지
원하고 순수학술도서 지원 예산을 지금의 50배정도 늘릴 일이다. 미술서적 가운데 순
수 학술서는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교과서로 사용하는 통사류나 대중용 교양서가 일
부 판매될 뿐이다. 다시말해 시장에 맡겨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을 비롯
한 문화에서 기초예술의 경우 시장기능만으로는 존립 불가능한 경우가 흔하다. 부디 새
정부는 문화산업 논리를 내세워 기초와 응용을 혼동하지 않기 바란다. 김대중 정부에
놀라서 하는 말이다.
- 문화예술 200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