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개념미술의 몇 가지 양상은 20세기 전반부터
존재해왔다. 가장 초기의 표현은 뒤샹의 악명 높은 <샘>에서 찾을 수 있고, 또 어느 정
도는 다다의 반 미술적 태도에도 드러난다.
그러나 개념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은 1950년대 말 에드 킨홀츠(Ed Kienholz)의 작
품과 1961년 플럭서스의 구성원이던 헨리 플린트(Henry Flint)의 작품에 “개념적
(Conceptual)”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미술작품의 지위, 즉 유일하고 소장하고 판매할 수 있는 지위에 도전하는 개
념미술은 일상적 사물, 사진, 지도, 비디오, 도표, 언어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많은 미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특징지었다.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자신의 평론집 『6년 : 오브제의 비물질화(Six Years :
the Dematerialisation of the Object』에서 이 시기 미술의 특징을 “비물질화”로 요
약하였지만, 하나의 용어로 다양한 형식적, 이론적 경향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보다는 로버트 스미손의 ‘비장소’, 멜 보크너의 ‘측정’, 브루스 나우만의 단순
한 동작, 리처드 롱의 ‘걷기’, 조셉 코수스의 ‘정의’, 그리고 존 발드사리의 ‘주
문회화’와 같은 다양한 양상에서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찾아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
다.
이들 작품에서는 지각적, 시각적인 것 대신에 아이디어가 중시되고, 언어자체가 미술
오브제로 제시되며, 매체 특정성에서 벗어난 결과 미술이 놓이는 장소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고, 나아가 미술의 상품화와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포함한 미술계의 제
도와 구조에 대한 비판적 태도 등의 변화가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개념미술을 이전의 모든 아방가르드와 완전히 결별한 일종의 패러다임
의 변화로 볼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개념미술의 특징이 현재에는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
지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1. 비물질화
아이디어에 기초한 비물질화된 미술의 현상은 1913년 뒤샹에 의해 처음 시도된 것이
다. 뒤샹은 미술이 언어와 문맥의 지배를 받는 시스템이고 그 의미는 오브제에 내재된
특성이 아닌 합의와 용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을 유포시켰고, 이차대전 이후 서구에
서 제작된 많은 미술은 이러한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개념미술의 비물질화는 오브제의 소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미의 담지자로서의 오브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기존의 오브제에 의미를 재투
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비물질화는 미술과 일상적 삶의 통합이라는 관심
에 보다 적합한 도구라 할 수 있다.
2. 언어의 사용
언어는 미술이 다른 분야와 교류하고, 미술과 미술가가 사회와 보다 활력 있고 효과적
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언어의 사용으로 미술가들은 미디어 공간
을 차용하거나 공적인 정보를 자신들의 분석으로 대체함으로써 공적인 정보의 문제를
다룰 수단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언어는 미술의 대안적 의미를 모색하고 미술의 기본적 전제에 대한 비판적 탐구
의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념미술은 작품의 이해에 필요한 메타언어
적 성격을 지닌다.
3. 제도비판
제도비판은 미술제도 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라는 숨겨진 구조에 대한 관심에서 나왔
다. 제도비판은 후기 자본주의의 조건에 대한 분석과 물질적 상품의 지위에 대한 분석
에 토대를 두고 있다. 몇몇 비평가들은 미니멀리즘을 자본주의의 구체화로 간주하지
만, 개념 미술가들은 화랑, 미술비평, 콜렉션, 시장 등으로 그 공격대상을 확대하였다.
4. 정치적 개입
초기의 개념미술은 많은 경우 미술과 미술제도에 대한 의문제기에 머물렀지만, 현재에
는 그것을 넘어 정치적 개입과 저항의 행위로 확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비물질화의 특
징이 정치적 불만의 표출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는 장치나 정치적 의식화 과정의 수단으
로 이용되는 등 지역적 상황에 따라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개념미술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 혹자는 개념미술이 그 비판의 대상인
상품체제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미술이라는
개념의 중요한 측면이 실질적으로 변혁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개념미술이 아니라 시각적, 물질적 오브제에 대한 비판적 태도라
는 개념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현대 미술가들이 아이디어, 과정, 경험 그리고 정
치, 사회적 문맥을 중시하고 설치, 사진, 언어, 대지미술, 그리고 미술과 삶의 통합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긍정적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1990년대에 등장한,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세대의 미술가로는 더글라스 고든
(Douglas Gordon), 르네 그린(Renee Green), 리암 길릭(Liam Gillick), 마크 디온
(Mark Dion), 가브리엘 오로츠코(Gabriel Orozco),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 펠릭
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등이 있다.
이들 미술가는 필름, 비디오, 사진, 텍스트,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이전의 분석적 과
정을 버리고 보다 경험적, 자전적인 것, 예컨대 정체성과 재현의 문제, 시각성과 권력
·지식의 문제를 다루는 추세이다.
소피 칼리(Sophie Calle)가 미지의 주체를 강박적으로 감시하고, 윌리 도어티(Wilie
Doherty)의 사진 텍스트, 비디오 설치가 북 아일랜드의 식민지 역사를 기록하며, 모나
하툼(Mona Hatoum)이 비디오 작품으로 어머니와 대화하는 것 등은 모두 이전의 개념적
전략을 통합하고 재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로댕 갤러리에서 열리는 오노 요코(小野洋子)의 회고전에는 설치와 오브제, 비디
오, 영화작품, 사진자료 등 126점이 전시되고 있다.
관람자에게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하는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회화>나
가구를 반으로 쪼개놓고 나머지 반쪽은 관람자가 머리 속에서 완성하라는 <절반의 방
(Half-A-Room)> 등은 플럭서스 활동 때부터 보여준 오노의 개념적 작업방향을 잘 보
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노 요코의 회고전은 개념미술의 전개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 정무정(덕성여대 교수)
< 미술관소식 2003년 7.8월호 / 국립현대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