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소(non-place)에 관하여 
 
                            
이영철 / 미술평론가,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잡초의 생태학이 있는 것 처럼 잘못된 사상의 생태학도 있다. (그레고리 베이트슨)
예술은 시간과 공간이 지배하지 않는 지역들로 향하도록 안내하는 길이다. (마르셀   
뒤샹)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는 지도는 주목할 가치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


Scoop 1: 장소의 출현과 예술의 관계 

이 글은 장소와 미술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에세이다. 장소에 대한 관념은 어떻게 생겨
난 것일까? 장소의 기원이 예술과 맺는 관계는 무엇일까?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이 무너
진 오늘날 장소는 왜 여전히 확고히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볼 수 없으나 
태초 이래 인간들, 생명있는 모든 것들 안에 내재하고 있는 볼 수 없는 것은 현재의 미
술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미술에서 시각성의 문제는 이미 보여진 것의 코드
들 안에서 그변화를 반복하고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사회체, 환경, 정
신)에 내재한 볼 수 없는 것을 불러내 각자의 지금 여기의 상황과 연결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장소는 인간과의 경계가 모호한 채 존재해왔다. 인간은 기본적으
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혼돈)에 대해 긴박함(predicament; 또한 위기, 처방, 범주라는 
뜻을 갖고 있다)을 통해 자신의 장소, 나아가 지리(地理)와 역사를 형성해 왔다. 호주 
원주민들, 중국인들, 조선인들은 18세기 이후에 유럽인(혹은 예수회 신부들)이 들어오
기 전에 자신들이 지구의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떤 한 지역, 지리가 생겨
난 것은 다시말해 그것의 근대 역사는 아주 많은 부분 구미인들의 활동의 결과물이었
다. 따라서 거의 통념화된 지리학적 편향, 다시 말해  지역을 지리적으로 주어진 것으
로, 이를테면, 인간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는 물리적 경계가 분명한 무대 처럼 여
기는 경향은 전적으로 구미인들의 근대적 사고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
이란 구미의 창안물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리를 정태적인 양상이 아니라 인간 활
동을 중심으로 파악해 보면 지리란 인간 활동의 출발점이 아니라 산물임이 드러나며, 
이는 지리(geography)라는 말의 본래적인 어원학적 의미, 대지 위에 쓰기 (earth in 
inscription)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는 서구든 비서구든 가릴 것 없이 지리적 장소를 
이론적 맥락 속에 자리매기는 데 관심을 가지는 사회과학자 집단과, 그에 대한 결정들
을 내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하여 그 결정들과 관련있는 정보를 찾는 정책입안자 
집단들이 간과하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 본다. 대지 위에 쓰기라는 문제 의식은 
형이상학도  관념론도 아닌 생태학적 철학과, 현재의 삶에 내재한 보다 깊은 층위를 가
로지르는 예술적 관심의 본령이다. 예술은 대지(직접적으로 사냥의 경험과 염원이 새겨
진 구석기 동굴벽, 또한 고대 동아시아에서 한자의 기원인 글자를 새겨넣은 거북의 복
부 껍질  갑골문의 바탕- 로 은유된다)에 무언가 새겨넣는 행위에서 기원하기 때문이
다. 지리적 영역으로서의 장소를 인간/사물 존재와 구별하여 물리적 객관적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 것은 18세기 이후 부터이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 2장을, 인간이 
자연 상태로부터 추방되어 역사와 불행의 시초를 알리는, 상징적이고 창시적인 동시에 
재난스런 행위로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처음으로 땅에 울타리를 치고 ꡐ이
것은 내것이야!ꡑ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그것을 모두가 믿을 만큼 단순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야말로 시민 사회의 진정한 창시자 라고 말한다. 자신의 땅을 울타리치
는 일은 몇가지 의미를 갖는다. 정치적 문제로서 토지 소유를 통한 사유 재산의 인정, 
인류학적 문제로서 대지(자연)을 상실한 인간의 타락, 심리학적 문제로서 원초적인 안
식처에 대한 욕망의 표현 등이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땅에 울타리를 치는 행위는 소유 
이전에 거리의 획정을 말한다. 내것이란 말은 나의 소유물 이전에 나의 거리에서 출발
된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의 형태는 처음에 둥지나 움막 같은 것으로 나타났
고 콤파스, 먹줄, 수준기, 자를 이용하여 주거를 설계하는 시대에 조차 자연 재해 혹
은 절대 빈곤 상황이 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지리적 장소를 경계짓는 은신처로서 움
막=헛을 만든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와세다 대학의 한 건축가 교수는 
도쿄 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지어놓은 것을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그 결과 생태적 기능성과 방어, 경제적 공간 활용에 있어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는 동물
들의 움집과 유사한 것이 많았다. (도판1)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미술가들은 이
와 유사한 집짓기를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경의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캡
슐 호텔이라는 집을 지은 오자와 츠요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나무 위에 새집 같은 움
막을 지은 파웰 알타머, 훨씬 내부가 편리한 이동형 주택을 지은 아틀리에 반 리샤우
트, 거의 하나의 고전적 프로젝트가 된 보디츠코의 이동형 캡슐, 그리고 실제 건축적 
프로젝트로 난민들과 홈리스 피플들이 이용했던 예들이 많다. (도판2) 장소가 인간이
나 동물의 삶의 기반, 즉 안식처(chez-soi)를 의미할 때, 이 안식처는 사실상 미리 존
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부서지기 쉬운 불확실한 중심을 둘러싸고, 원을 그린 다음
에 경계가 한정된 공간을 대지 위에 세우는 행위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거주할 집을 
짓는 행위 이상의 근원적 의미를 가지며, 5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큐레이터인 이고르 
자벨(Igor Zabel)이 설정한 주제인 개별적 시스템(individual system)을 구축하는 일이
기도 하다. 현대 세계에서 법적 소유권의 영역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서명이라는 것 조
차 개인을 나타내거나 소유 주체(또한 권력과 연관된)이기 이전에 장소(영토)를 형성하
는 불확실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뒤샹의 여러 개념적 기성품들(ready-mades), 자신
의 배설물을 담은 깡통에 서명을 한 피에르 만초니의 <미술가의 똥>, 그리고 더 이상 
어떤 오브제도 만들지 않으며 강가에서 직접 식물과 꽃을 재배하는 피터 피슬리와 데이
빗 바이스의 복합 정원(Complex Garden)(도판3) 등은 자연적 충동  내적 본능과 외부 
환경과의 관계 - 과 문화를 분리할 수 없는 행위로서 자신의 장소(영역)를 획정하는 지
표들이다. 이우환이 [예술의 여백]에서 말하듯이, 선을 긋고 점을 찍는 일은 화면에 단
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교섭을 통해 환경을 획정하고 장소화하는 일
이 된다. 그것은 쉽게 표현해 북치는 행위에 비유할만하다. 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
면, 소리는 파동장을 형성하고 외부에 소리벽을 두른다. 앞서 인용한 루소의 글에서 땅
에 울타리를 치는 것의 내적인 충동은 나의 거리를 만들기이다. 내 것이란 말은 내가 
가진 거리를 유지하겠다는 장소화의 표현이다. 새는 노래를 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만
든다. 들짐승들은 자신의 분비물이나 냄새를 남김으로써 영역 표시를 한다. 물고기는 
동작이나 몸색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상대를 위협하며 영역의 경계를 유지한다. 그러
나 이 거리를 카오스 세계로부터 안정되게 하는 것은 행위자(인간, 동물, 식물)의 표현
적 재료와 성분들의 배치, 관계, 구성을 통해 이뤄진다. 이것들 모두가 예술의 기초적 
속성을 이룬다고 할 때, 제도적 의미의 예술 개념은 아주 좁은 설정일 수 있으며 장소 
개념의 기원이 밝혀지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장소는 물리적 대상이 아니며,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풍경에 가깝다. 풍경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용어가 아니
라 동식물과 인간의 생태, 정신, 건축, 사회 환경에 속하는 용어이다. 주1) 지금의 시
대는 17세기 이전의 언어에서 장소(site)라는 단어가 인간/사물의 존재와 경계가 불분
명했음을 나타내듯이,주2) 장소와 인간 경험이 일치하지 않는 일종의 언어의 혼란 상태
를 드러낸다. 푸코는 1960년대에 그 점에 착안하여 (이성과 동질성의 반복으로서의) 역
사가 아니라 (비이성과 이질성의 차이화로서의) 지식의 고고학을 전개하는 [말과 사물]
의 최초 구상을 전개해 갔다. 그는 보르헤스의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서 동물을 분류
한 방식을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단서로서 인용한다. 그것은 언어적 사고에 있어 공통
의 장소를 갖지 않는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b)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c) 사육 동물 (d) 젖을 
빠는 돼지 (e) 인어 (f) 전설상의 동물 (g) 주인 없는 개 (h)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
물 (i) 광폭한 동물 (j) 셀 수 없는 동물 (k) 낙타털과 같은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l) 기타 (m) 물 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n) 멀리서 볼 때 파리 같이 보이
는 동물. ([말과 사물] 서문)

이러한 분류법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한 대상, 동물에 대한 인간 사고의 공동의 공간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이다. 푸코는  여기서 불가능성은 열거된 사물들의 근접이 
아니라 그러한 근접이 이뤄질 수 있는 장소 자체이다. 라고 말한다. 존재들이 병치될 
수 있는 장소, 즉 무언가의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물을 묘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개별적 특성들로서 1인칭 시점에서 벗어난 각각 그것으로서의 3인칭이다. 근대
적인 장소 개념은 유럽인의 1인칭 시점 혹은 그것의 연장이었으나, 이제 새로운 장소화
는 3인칭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Scoop 2:  3인칭의 장소 

미술에서 발화의 조건 구실을 하는 것은 두개의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다. 나를 말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앗아가는 3인칭이 우리 안에서 태어날 때 비로서 미술이 시작된
다. 스모 선수가 경기를 위해 엄청나게 체중을 불려 다른 무엇으로 보이듯이 미술이 가
능해 지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지워서 다른 무엇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미술 작업에서 
인물은 개성있는 나가 아니라 개별화로서의 그것을 향하기 때문에 모호하지 않고 일반
적이지도 않다. 독일 작가 어윈 부름(Erwin Wurm)은 1분 퍼포먼스 조각들을 만든다. 일
종의 역습과 같은 그의 퍼포먼스는 한 순간에 물리적 공간의 환경을 역전시키면서 그것
의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도판4) 1960년에 이브 클라인이 했던 퍼포먼스 <허공
void 속으로의 도약>, 60년대에 많은 활동을 벌였던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의 퍼포먼
스들, 찰스 레이의 1973년 <플랭크 피스>, 앤과 베르나르 블름의 <나무와의 접촉> 등
의 작업은 1인칭을 버리고 3인칭의 무엇으로 순간 변이되는 작업들이다. 이들의 작업들
은 공통적으로 마치 대지의 모서리에 몸을 끼우거나 간신히 의탁해서 에너지를 충천받
는 모습이다.(도판2) 부름의 일련의 작업들은 일시적이고 즉각적이고 윗트가 있고 유머
러스하고 시니컬하고 상황주의적이고, 탈의미, 탈관념적이고, 엄청나게 포용적이고, 순
간 도주선을 만들어 공간을 탈주하는 그런 조각이다. 비평가이자 기획자인 파올로 허켄
호프는 숨을 멈추고 스피노자를 생각하라 (Hold your breath and think of Spinoza)는 
어윈 부름의 계속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60개의 간단한 문장으로 구성된 에세이를 썼
다. 마지막 문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스피노자>(괄호 표시는 스피노자가 태어
난 해인 1632년부터 366년이 지난 싯점인 1998년에 태어난 가상의 스피노자를 지칭한
다)는 경고하기를,  만일 두뇌 속의 산소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면 어떤 비전도 어떤 언
어도 어떤 기억도 어떤 아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단 1초라도 <
스피노자>가 된다면, 앞서 요구했던 사항들(59가지) 중 어느 것 혹은 모든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팔레드 도쿄의 디렉터인 제롬 상스는 어윈 부름에게  학생: 질문은 또
한 답이 될 수 있나요? 소크라테스: 그렇다 라는 제목의 인터뷰용 질문 15개를 보냈는
데, 작가는 그 답변 대신에 25개의 질문을 더 보태왔다. 정답은 없고 오로지 질문만으
로 이뤄지는 방식, 그의 작업은 우리의 생각이 한곳에 머물지 않도록 어디에도 없는 장
소(nowhere)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예수가 동시대의 많은 유대 지식인들과 정
치가들의 답을 감추고 있는 질문들을 비껴가며 대화 상황 마다 다르게 대화했듯이, 그
는 어떤 답이 아니라 물음을 촉발하는 상황을 연다. 정신의 장소로서의 nowhere는 non-
place(유토피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여기(now+here)를 과정 속에 구축하는 일이
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에서 벗
어나 작업에서의 현행 사건을 보게 만드는 행위이다. 장차 도래할 어떤 것, 이뤄져야 
할 무엇을 약속하지 않으며 즉각적인 상황 개입이다. 덴마크 출신의 젊은 작가 제프 하
인(Jeppe Hein)은 공공 장소에서의 분수 작업을 한다. 공원에 놓인 벤치에 사람이 앉으
면 동시에 분수가 하늘로 치솟거나 사람들이 광장의 어느 지점을 지나가면 갑자기 원형
의 분수들이 하늘로 치솟아 보행자를 에워싼다. 작가에게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물리
적 장소의 맥락이나 역사가 아니라 3인칭으로 시점으로 화하는 개별성의 체험,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융합된 아주 짧은 시간적 사건 체험이다. 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