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화
사회 전반에 걸친 침체 분위기는 한국화의 경우 역시 예외일 수 없는 것이었다. 특별한 이슈도 없었을 뿐 아니라 만성적인 침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눈에 띠는 움직임 역시 감지되지 않은 한해였다. 그 중 우리나라의 화단 구조상 특정한 연령층에 집중되어 있는 중진 작가들이 집단적으로 맞이하게 된 교단에서의 정년퇴임은 한국화의 물리적인 세대교체를 암시하는 상징적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의 이종상, 홍익대의 송수남, 중앙대의 오태학 등은 강한 개성과 독특한 카리스마로 한국화단을 구획하였던 이들이었다. 이들이 지녔던 절대적 권위와 중량감을 대체할만한 작가들이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은 바로 우리 화단이 지니고 있는 취약한 작가구조를 새삼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해묵은 절대 명제는 절충과 융합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바탕으로 그 폭을 넓혀가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 특성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할 것이다. 이미 산수화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랜 실경 산수는 원근과 투시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풍경 재현으로 정착되고 있으며, 채색화는 재료에 대한 전향적인 수용을 통하여 그 표현의 폭을 일정 부분 넓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들은 분명 특정한 시공의 상황을 반영하는 시대적 산물이지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대와 회의가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방향 상실과 가치 혼돈의 상황이 바로 오늘날 한국화가 당면하고 있는 솔직한 현실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일단의 청년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발랄한 개성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조형들이다. 필묵이 지니고 있는 교조적인 심미관에서 탈피한 분방한 수묵 실험들과 옻칠, 천연 염색 등 새로운 색채 감각과 조형 기법을 통해 발현되는 독특한 색채의 심미 등은 이들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스산한 죽음의 동토(凍土) 속에서도 한국화는 여전히 그 유장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상철│미술비평, 공평아트센터 관장 ksx0011@yahoo.co.kr


■ 서양화
2003년 국내화단의 주요 특징으로는 유난히 독일현대미술의 경향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많았던 점을 들 수 있다. 그 주요 전시로는 독일현대미술전(부산시립미술관), 독일현대미술 3인전(갤러리 현대), 게르하르트 리히터전(대림미술관), 볼프강 라이프전(국립현대미술관), 요셉 보이스전(국제갤러리)이 있다. 이 전시들을 통해 소개된 주요 작가들로는 다중 인물 사진과 포르노 이미지의 토마스 루프,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자연과 환경 그리고 생태에 접맥된 볼프강 라이프, 독일 플럭서스 운동의 요셉 보이스를 들 수 있다. 그런가하면 독일 플럭서스 운동과 관련하여 그 중심 작가 중 한 사람인 오노 요코전(로댕갤러리)이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특징으로는 아시아의 정체성을 묻는 전시들이 많았던 점 역시 주목된다. 그 주요 전시로는 아시아현대미술 프로젝트-시티넷 아시아 2003전(서울시립미술관), 2003 제 1회 아시아의 지금전(마로니에 미술관), 중국 현대미술 3인전(갤러리 아트사이드), 인도현대미술전(토탈미술관)이 있다. 이 전시들 가운데 시티넷 아시아 2003전이 아시아 현대미술의 네트워킹의 한 가능성을 실험했다면, 2003 제 1회 아시아의 지금전에서는 근대화를 서구화의 한 과정으로 보는 종래의 인식을 비판하며, 그보다는 지역주의 속에서 아시아의 모더니즘을 묻는다. 그리고 인도현대미술전에서는 절충주의로 나타난 인도의 현실을 묻는 한편, 절충주의 특유의 역동성에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본다. 이외에 올 한해동안 열린 주요 전시로는 사유와 감성의 시대전(국립현대미술관), 진경 그 새로운 제안전(국립현대미술관), 곽덕준전(국립현대미술관), 신학철전(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이우환전(삼성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사유와 감성의 시대전은 1970년대 국내화단의 단색조회화(모노크롬회화)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화단의 모노파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이우환전과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곽덕준이 재일(在日) 한국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정치적인 메타포에 실어 표현했다면, 신학철은 1980년대 국내의 정치적 현실을 매체미술과 콜라주의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 그런가하면 진경 그 새로운 제안전은 진정한 한국회화의 전범으로 인식되는 진경산수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을 묻는 전시였다.
고충환│미술평론가 arthan1@chollian.net


■ 조각
2003년 10월 3일부터 11월 16일까지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이우환-만남을 찾아서>는 한 작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기는 했으나 현대조각에 있어서 존재의 사유와 물질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었다. 더불어 외국작가의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볼프강 라이프:통로-이행>(7.9~9.12)도 명상적이면서 자기반성적인 조형언어를 찾고 있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2003년도 조각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젊은 작가들의 왕성한 작품발표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기억할만한 조각개인전으로 송필, 주성혜, 최진기, 박은선, 이재효, 유병영, 이동재, 이길렬, 유영호, 정현, 김석, 김일용, 천성명, 박경범 등을 들고 싶다. 이들 중 쌀이나 짐승의 가죽과 같은 물질을 통해 자신의 주제를 보여주고자 한 이동재나 송필이 주로 재료의 혁신이란 맥락에서 주목 받았다면 이재효의 경우 집요하면서 끈질긴 노동을 통한 재료와의 투쟁이 돋보였다. 그밖에 이미 사라진 활자를 이용하여 도시풍경을 재현한 노주환과 네거티브 볼륨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이용덕의 작품도 작품의 내용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의 확산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2002년말 개관한 김종영미술관이 조각미술관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까닭에 조각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촉망받던 조각가였던 구본주가 9월 29일 월요일 새벽 5시경 불의의 고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는 점이다.
최태만│미술비평, 국민대교수 choitaeman@yahoo.co.kr


■ 공예
공예의 문화산업적 가치와 가치진정성 상실의 징후들
올해 공예계는 여러모로 국제적 규모의 행사와 공모전, 기념전 등으로 분망(奔忙)한 한해였다. 제3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렸고, 세계도자비엔날레가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의 발전적 계승을 꿈꾸며 두 번째 행사를 치렀다. 이외 지역의 공예 관련행사로 강진청차문화제, 목포도자기축제가 개최되었고 공모전으로는 익산한국공예대전, 전승공예대전, 전국공예품대전, 올해 창설된 2003대한민국문화관광상품대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등이 앞서 열거한 국제비엔날레와 연계된 공모전과 더불어 풍성한 결실들을 우리 앞에 선보였다. 또한, 한국공예가협회가 창립된 지 3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많은 공예가들이 합심하여 성대한 기념전시와 세미나를 열며 대중을 향해 다가서기를 희망했다. 아쉽게도 현대도예의 태동에 기여했던 원로도예가 황종구씨의 별세가 있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04년도 ‘올해의 작가’로 김익영과 윤광조를 선정하여 미술전시사에 전례없는 기록을 남긴 것이나, 가나아트센터 초대로 열린 이종수도예전은 올해의 커다란 공예사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이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인사동의 화랑가에서 열렸지만, 치밀한 기획이나 작가에 대한 창작지원이 선행되지 않는 대관전 위주의 전시문화로부터 벗어나려는 공예계의 노력이 아쉬울 뿐이다. 하루속히 디자인미술관과 같은 현대공예미술관의 설립과 한국공예가협회 차원의 전시공간 확보가 절실한 실정이다. 그나마 평창동의 가나아트샵과 목금토갤러리, 우리그릇 려에서 열린 전통공예, 유리공예, 음식과 그릇의 만남과 같이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예술적 기획들은 공예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공예는 대중과 함께, 이번 청주비엔날레의 주제처럼 ‘쓰임’을 위해, 생활 속에서 그 미래를 올바로 꾸려가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이점에 관해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노드로(Teodor W. Adorno, 1903-1969) 가 문화산업의 근거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면서 ‘문화! 는 곧 사회를 지배하는 순수가치의 영역이며 문화를 물신주의적으로 실체화 하는 문화산업적 징후들’을 경고했던 것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을 소비재로 만드는 이러한 일련의 실용이나 상품화를 전제로 한 문화(산업)적 축제들을 보면서 공예가 우리의 삶의 질을 고양하는 예술적 기제들을 폐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당대의 시대적 정신을 담은 공예의 진정한 가치가 생활과 대중 속에서만 구현되어야 할 뿐 만아니라 예술생산자로서, 작가나 비평가, 미술사가, 이론가들과 같은 예술적 가치창조자들에 의해 고양될 수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만 한다. 가치창조자들에 의한 예술생산이 전제되지 않은 예술의 수용과 소비는 필연적으로 물신주의적 상품화에 탐닉하는 ‘잃어버린 사회’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동광│미술비평, 숙명여대 겸임교수 k2curator@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