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헌사의 쟁점 ⑻] 장정 발달사…知的 가치를 넘어 책 그 자체가 예술!

중국 베이징의 한 고서점에서 황금색 비단 표지로 된 황실 도서 ‘어제자정요람(御製資政要覽)’을 발견했다. 펼쳐보니 ‘호접장(蝴蝶裝)’이었다. ‘호접장’이란 인쇄된 종이를 반으로 접어 붙인 것으로 두 장씩 넘겨 가며 읽도록 만들어진 장정 형태를 가리킨다. 책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모양도 아름다워 누구나 탐내는 물건이다.
인터넷,전자책 등 첨단 매체가 부각되면서 책의 소멸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내 섣부른 주장이었음이 밝혀졌다. 책은 편집된 정보 다발 이상인 것이다. 종이의 무게감,잉크 냄새,그리고 잘 조직된 문자의 배열이 주는 단정한 아름다움. 이같은 책을 두고 유네스코는 1964년 ‘표지를 제외하고 49쪽 이상’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48쪽 짜리는 아니고,49쪽은 책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핵심은 묶어야 한다는 점이다. 장정(裝幀)이 책이냐,책이 아니냐를 가르는 핵심이라는 뜻이다. 하드웨어라는 이유로 무시돼왔던 장정 발달사를 들여다보면 종이책의 아름다움이 새삼스럽다.
◇사침이냐,오침이냐
흔히 볼 수 있는 조선시대 고서(古書)는 ‘선장(線裝)’의 방식으로 제작됐다. 문자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접어 벌어진 면을 가철한 뒤 앞뒤를 감싸 실로 묶은 형태다. 중국,일본에서도 ‘선장’이 널리 쓰였는데 특이한 것은 구멍의 숫자가 나라마다 달랐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구멍 4개를 뚫는 사침안정법을 쓴 데 비해,우리나라에서는 5개 구멍을 뚫는 오침안정법이 널리 사용됐다. 숫자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 때문인데 중국 일본은 짝수를,우리나라는 홀수를 선호했다. 조선에서 5를 고집한 데는 실용적인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조선의 서책은 중국,일본에 비해 30∼50% 정도 컸다. 조선의 책이 큰 이유는 민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책이 유통됐던 중국과 달리,조선의 책이 주로 왕실에서 제작됐기 때문이다. 왕의 권위를 책의 크기로 보여준 것인데,노쇠한 왕을 위해 문자를 크게 찍을 수 있게 책 크기를 키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실제 세종대왕의 경우 경자자가 작다는 이유로 갑인자를 크게 만들어 썼다. 어쨌든 ‘선장’은 한?중?일 3국이 쓴 장정 중에서 가장 견고한 형태였다.
책의 전 단계로는 기원 전 14세기 상대(商代) 중엽 탄생한 ‘간책(簡冊)’을 들 수 있다. 대나무 또는 나무를 얇고 길게 깎은 것을 간(簡)이라고 한다. 이 간에 문자를 기록하는데 위,아래 부분을 가죽끈 등으로 엮으면 간책이 된다. 간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정보가 워낙 적은데다 무겁고 우둔한 게 단점이었다. 간책 이후에 탄생한 ‘겸백서(?帛書)’는 명주에 문자를 기록한 것이다. 두루말이 형태로 부드럽고 가벼운 반면,가격이 비싸서 널리 쓰이지 못했다.
종이가 발명된 뒤에는 두루말이 형태의 ‘권자장(卷子裝)’이,이어 종이를 가로로 이어 붙인 다음 병풍처럼 일정한 폭으로 접은 절첩장(折帖裝)이 등장했다. ‘호접장’과 ‘포배장(包背裝)’은 ‘선장’이 나오기 직전의 형태로 두 장의 표지를 사용한 ‘선장’과 달리 한 장의 표지로 앞뒤를 감쌌다는 점이 다르다. 19세기 말이 되면 서양으로부터 양장(洋裝)이 밀려들어온다. 철심으로 한번 묶고 종이 표지를 댄 소프트커버와 실로 묶은 하드커버는 오늘날 우리 도서 장정의 주류가 됐다.
◇책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보조기구들
오늘날만큼 종이가 튼튼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과거에는 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보조 도구들이 사용됐다. 서적을 귀하게 여겨 비단이나 대발로 두루말이를 감쌀 수 있도록 하거나 책자형 서적의 앞 뒤에 두 장의 목판을 대고 끈으로 묶어 보호하기도 했다. 서적의 전후좌우 4면을 두꺼운 표지로 감싸는 사합투(四合套),상하까지 감싸는 육합투(六合套)도 생겼다. 아예 나무 상자에 넣어두기도 했다.
이런 보호 용구들은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지만 책 자체가 보물인 경우도 있다. 타이완 고궁박물원 도서관의 통제 서고에서 ‘무량수불백복장엄수상’이라는 희귀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림 부분은 비단 바탕에 오색 명주실로,문자는 남색으로 수놓아서 완성한 책이다. 또 ‘금강경’은 비단에 금실로 문자를 수놓아서 완성한 것으로 한 궁녀가 평생 동안 작업해서 황제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의 노력으로 책은 지적 가치를 넘어서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게 됐다.
책을 읽다 중요한 대목이 찢겨나가 황당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식의 수난을 목격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옛 사람들은 서적을 매우 귀하게 여겼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할 때까지 저자,편집자,인쇄공,교열자,제본공,제지공 등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고,이를 함부로 다루는 것은 그들의 노고 전체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여겼다. 종이와 문자,그림이 어우러져 탄생한 날렵한 책 한권. 그 아름다움은 ‘지식 검색’의 세상에서도 빛바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 국민일보 6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