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전범을 찾아 - 미술
학문적 교양과 현장체험 녹여내
교수신문 2004년 01월 12일 이은혜 기자

총 21명의 전문가가 여러 편의 비평을 추천해줬다. 하지만 추천을 거절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만큼 미술비평의 진정성이 내부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여기 우수사례들을 분석적으로 예시함으로써 장르화된 미술비평의 매너리즘을 걷어내 보고자 한다.
비평의 전범으로는 두 편이 나란히 선정됐다. 이용우 고려대 교수의 ‘시스템의 허영에 편승한 전자놀이 찬미가’(‘월간미술’, 2002.11)와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의 ‘비평의 역류 또는 역류적 비평의 실천을 향해’(‘월간미술’, 2003.2)가 그것이다. 추천에는 총 21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는데, 두 편의 글은 각각 다섯 명으로부터 좋은 비평의 사례로 꼽혔다.
이용우 교수의 글은 ‘미디어 시티 서울 2002 展’에 대한 비평이다. 이 글이 잘 된 비평이라 평가된 근거는 뭘까. “이용우는 이중성의 잣대를 들이댄다. 즉 미디어아트가 시스템에 편승하고, 국제비엔날레의 거품을 타고 있는 것을 매우 구체적인 근거로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그런 허구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간적인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미디어아트의 폭력성과는 다른 긍정적인 점도 조망하고 있다. 요컨대 단순 묘사를 넘어, 이중적 관점에서 미디어아트의 현주소를 잘 짚어내고 있다”라는 전영백 홍익대 교수의 평은 잘 된 비평의 요소들을 적절히 짚어내고 있다.
사실 미디어아트는 지난 십여 년간 작가나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주목받은 분야였지만, 체계적인 지식에 기반한 제대로 된 평은 없다는 지적들이 주를 이뤘다. 맹목적인 기술신봉이나, 획일화된 용어사용, 개별 작품들의 미학적 가치를 구별하지 못한 점, 나아가 미디어아트 역사 전반에 대한 통찰력 결여가 이쪽 비평계의 문제점들로 지적돼 왔다.
이와 달리 이용우 교수의 글은 여러 요소들을 충족시킨다고 평가된다. 첫째, “미디어아트의 역사를 잘 꿰뚫고 있다”는 게 여러 비평가들의 견해다. 즉 서구 1960년대 기술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역사를 짚어내고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현시점 한국 미디어아트 분야를 객관적으로 위치시키고 있다. 둘째,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서술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흔히 미술비평의 두 가지 조건으로 ‘학문적 전제’와 ‘현장체험’이 꼽히는데, 이 글은 양자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것. 셋째, 개별 작가들의 미학을 차별화 해 구체적으로 평하고 있는 점이다. 제니퍼 스타인캠프, 홍승혜, 카트린 이캄, 에두아르도 카츠, 문주 등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짧은 비평문 속에 적절히 섞여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넷째, 개별 작품들의 미적판단에서 나아가 그것들을 미학적 담론내에 위치시켜 동시대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나아가 무엇보다 주류 미학에 저항하는 점으로 국제화와 비엔날레의 허구들을 속속들이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비평가들의 높은 점수를 샀다.
비평가의 자의식을 문제삼다
심상용 동덕여대 교수의 ‘비평의 역류 또는 역류적 비평의 실천을 향해’(월간미술, 2003.2)는 이용우 교수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잘 된 비평으로 꼽혔다. 이 글은 전시비평이 아닌 미술비평계에 대한 평이다. 즉 비평가들의 자의식을 각성시키는 것으로 제대로 된 문제제기라는 게 주요 평이다. “잘 된 비평이 부재한 원인들을 구조적인 틀에서부터 비평가 개인의 자질에 이르기까지 문제점들을 콕콕 짚어내고 있다. 즉 비평의식이나 방법론의 부재로 지적됐던 문제점들, 특히 비평가들이 자본과 권력의 네트워크 안에서 의식을 결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라는 최열의 평은 여러 비평가들도 동의하는 견해다.
특히 그에 대해 “인문학적 철학기반이 탄탄하기에 현재 미술지형도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다”라는 평을 받기에 주류 미술계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의 주요담론인 신체담론, 디지털 기술 등 지난 10여 년간 미술비평계 전반을 꿰뚫고 있으며, 특히 신기술이 무조건 진보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과 자본과 은근히 결탁하는 구조를 지적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동안 미술계를 빠른 속도로 진행돼 온 것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것들이 필연성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을 재검토한다.
획일화된 작가론에서 벗어난 메타비평
팝, 실험미술, 설치미술 등은 그가 가하는 비판의 메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심상용 교수의 문제의식은 모든 걸 포괄하고 있어 비판의 총합같은 인상이 없진 않으나, 그럼에도 미술 비평계가 전시평과 획일화 된 작가론만 주를 이루고 있기에 이런 비평은 충분히 설득력이 지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잘 된 비평의 요건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현재 담론의 어지러움 속에서 뉴휴머니즘적 가치를 논하고 있는 것은 미술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비평의 전범 외에 류병학, 고충환, 이영철, 김홍희의 비평이 좋은 비평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들 모두 자기 스타일을 확보하고 있는 평론가들이다. 류병학의 ‘한국미술 따라잡기’(월간 미술세계, 1999.11~2000. 6월 연재)는 미술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그 중에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 - 이우환 죽이기, 그 이후’는 미술계에서 그 어렵다는 원로에 대한 고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계몽적 애정에도 불구하고 예단적 평가보다는 인상에 근거한 비평을 펼쳤고 그 속에서 보이는 무례함과 당당함, 거침없는 장광설은 긴 호흡으로 답답한 미술비평계의 고여있는 공기를 시원스럽게 갈랐다'는 평론가 강선학의 평은 동지애가 듬뿍 담겼다. 물론 이 글은 주류 비평계에서 냉소적 반응을 얻었을 뿐인데, 문학이나 미술이나 침묵의 북소리가 요란하다.
고충환의 글들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성실하고도 진지한 접근이라는 평을 받는다. ‘김창겸: 실제와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다’(월간미술. 2003.4)이나 ‘김주연 론’ 등이 추천됐다.
이영철 교수의 '회화를 넘어선 회화, 여기까지 왔다'(아트인 컬처. 2003.3)와 ‘전지구화, 비엔날레, 미래미술’(월간아트, 2001.2)는 '문장과 논리로서의 비평'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의 발견으로서의 비평'으로 추천된 경우다. 평론가 사이에서의 주류-비주류 싸움이 아니라, 저널리즘, 미술관, 미술시장의 다각적 작가 프로모션이 강화된 요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보여줬다는 점이 평론가 안인기 씨가 밝힌 추천의 변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작품에 대한 비평가적 거리두기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점점 발휘하기 힘들어진다는 지적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김홍희는 그의 어느 평을 막론하고 한국 페미니즘 미술비평의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대부분 페미니즘 미술비평이 이론틀에 갇혀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추천됐고, 김찬동은 행정직에 종사함에도 서양화가 배준성의 작업을 모더니즘 이론을 종합적으로 점검, 비판, 재문맥화하면서 기호생성과 소비, 중첩의 관점으로 작가의 개별작업과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미술계의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동양화 분야의 비평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필묵에서 맹목적으로 환영을 만들어낸다”라는 이영철 교수의 비판이나, “산수화가 여전히 도가사상이나 자연으로의 복귀 속에서만 해석된다”는 김원방의 지적은 동양화 비평가들이 새겨들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우창 교수의 철학적, 미학적 기초다지기작업('풍경과 마음')은 '후기구조주의 이론이 지워버린 인간의 얼굴을 되살리는 힘을 가진 비평으로 가득찼다'는 평가와 함께 '날선 비평이 인간을 포용해 세계를 보는 깊은 인식의 배면에서 인간, 사건, 작품을 교직해내지 못한다면, 현학과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며 비평가들의 입에 단골로 오르고 있다. 그 외에 동양화쪽은 정헌이 교수의 ‘山/水/風/景을 넘어서’와 강관식 교수의 ‘분열과 소외의 억압, 혹은 自生과 生生의 욕망’이 동양화 분야에서 잘 된 비평으로 추천받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지난 5년간 발표된 우수 미술비평
미술비평은 이론적 예단에서 인상비평을 왔다갔다 하는 골목에 서 있다. 전시에 대한 참여와 비평적 거리두기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수비평으로 꼽힌 아래의 글들 속에는 그런 시대의 풍경과 그런 시대를 진정성 있게 웅변하는 논리가 마련돼 있다.(추천 순)
이용우, ‘시스템의 허영에 편승한 전자놀이 찬미가’, 월간미술, 2002, 11(5명)
심상용, ‘비평의 역류 또는 역류적 비평의 실천을 향해’, 월간미술, 2003.2(5명)
류병학, ‘한국미술 따라잡기’, 월간미술세계, 1999.11~2000. 6(4명)
고충환, '김창겸 : 실제와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다', 월간미술 2003. 4(4명)
이영철, '회화를 넘어선 회화, 여기까지 왔다', 아트인컬처 2003.3(4명)
김홍희, '매튜 바니 제3의 성을 향한 오딧세이', 월간아트 2000년 9(3명)
●추천인 명단
강선학(미술평론가), 강수미(홍대), 권영필(한예종), 김백균(중앙대), 김영호(중앙대), 김원방(미술평론가), 박계리(경기대), 박신의(경희대), 신방흔(군산대), 안인기(미술평론가), 유진상(계원조형대), 윤진섭(호남대),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원곤(단국대), 이희영(서울대), 장동광(숙명여대), 전영백(홍대), 정헌이(한성대), 조관용(경원대), 최열(미술평론가), 최금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