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로서의 미술관
-과연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들어가는 말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미술관이라는 용어는 참으로 시련도 많고 오해도 많은 것 같다. 무릇 미술관이라 함은 작품을 수집하고 이를 조사연구하며 그 결과를 전시를 통해 일반에게 공표하고 교육함으로써 시각문화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시설이자 한편 국민의 교양을 증진시키는 기관이라 간단하게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미술관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미술관을 오직 전시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미술관 전시는 미술관 활동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미술관의 모든 것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오늘날 미술관에 비해 실험적이고 현장성이 높은 독립 큐레이터 또는 소수의 큐레이터들에 의해 운용되는 소장품 없이 전시만을 소화하는 외국의 쿤스트 할레는 미술의 새로운 현상을 실험하고 보여주기 위한 공간적 개념이 강한 장소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의 미술관에서 파생된 전시관 형태를 미술관과 혼동함으로써 문제는 발생한다.
철지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미술관은 분명하게 말해서 미술박물관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물관학적인 입장과 원칙에서 미술관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장품과 이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큐레이터 그리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다. 따라서 미술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관문화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건물이다. 우선 건물을 짓고 나서 그 건물을 사용할 미술관의 용도와 성격을 결정 한다. 이는 옷에다 몸을 맞추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래서 옷과 사람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건물의 동선과 실제 미술관의 동선이 엉켜서 혼동을 주기도 하고 소장품의 성격과는 판이한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겪게도 한다. 또 미술관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큐레이터의 경우도 업무의 성격상 매우 섬세하게 분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의 전문적인 부분을 모두 떠안고 있다. 큐레이터가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 그리고 책임감까지 가져야 하는 콘서베이터나 레지스트라 일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일이 오늘의 우리나라 미술관에서는 고스란히 학예원 즉 큐레이터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차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소장품 부분을 들여다보면서 좀더 엄격하게 미술관의 의미를 새기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미술관 중 진정으로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이 과연 몇 개소나 될까.
역사로서, 문화로서의 소장품의 의미
미술관의 기본전제는 작품의 수집에 있다. 그리고 미술관 전시는 일차적으로 미술관의 설립목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설립목적은 미술관의 소장품과 소장정책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소장품 확보가 전제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많은 미술관의 경우 상설전시기능이 거의 없거나 전무한 상태임은 물론이고 따라서 소장품을 통한 기획전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열악한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60여개에 달하는 등록미술관들의 형편은 소장정책의 방향이나 소장품 확보를 위한 어떤 제도적인 검토도 어려운 초보적인 미술관의 형태를 노정하고 있으며 미술관의 수집정책과 수집 방법 그리고 수집 후 분류, 보관, 서류화하는 등의 학문적인 이해나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다시 미술관의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작품관리를 위한 전문직원인 레지스트라의 미확보라는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운용되어 오고 있다.
작품수집이 미술관의 존재이유가 되는 것은 미술품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 때문이다. 미술품은 단순하게 완상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술관이 작품을 수장한다는 것은 우리시대의 우리의 삶을 타임캡슐에 넣어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는 우리의 흔적을, 이 지상에 다녀간 징표를 남기기를 원한다. 그리고 수 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의 흔적도 남아있기를 원하며 남는다면 누구나 우수한 문화와 교양과 지성을 겸비했던 사람들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미술관이 역사 속에서 처음 등장하였을 당시 그 수장품의 의미는 집권자나 지배층의 신대륙이나 미개지로의 여행, 전쟁 등을 통해 얻게 된 많은 진기한 물건을 모아 자신의 힘과 재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미술관이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근대적인 개념의 미술관이 성립되면서 미술관의 작품 수집은 당대문화의 우수성을 서로 즐기고 향유하며 이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생물학적 의미에서 본다면 문화라는 유전인자를 통해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종족보존본능’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하나의 도구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미술관의 소장 작품이다.
미술관은 당대의 우리문화의 우수하거나 독특한 면모를 추리고 가려내어 수집함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후대에 남기고자하는 기초 자료를 마련하는 동시에, 당대문화현상을 파악하고 집대성하며, 우리문화의 주역들과 감상자들을 매개한다는 일차적인 미술관의 소임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미술품 수집의 의미는 그러나 미술과 사회와의 연관성에 관한 이해와 연구가 깊어질수록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우리는 미술과 사회는 크게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이는 1950년대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의 미술사에 대한 연구과 그 학문적 업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사회와 유리된 별개의 현상으로 보았고 전체적인 삶과는 관련이 없는 고립된 분야라고 인식되어 있었고 이러한 견해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술과 사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회화가, 미술이 한 사회집단의 문화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나아가서 미술작품도 평가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읽을 수’ 있다는 엄청난 확신을 주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미술관은 바로 미술을 사회적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우리에게 많은 이해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미래의 발전된 사회를 위해서는 국가 구성원들이 우리사회를 읽고 우리의 후손들이 문화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당대의 문화유산인 미술품을 수집해야 한다. 그리고 미술관은 재정의 부족과 사회적 인식이 미미한 가운데 어렵지만 계속해서 이 일을 해 나가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교육, 오락, 실용을 위해 수집, 분류된 물건들의 집합체”인 미술관의 수장품 들을 통한 미술관 문화의 정립을 위해서도 현재의 소장정책은 시대적인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나름의 일정한 계획과 방향, 시간과 경비의 확보가 전제된 가운데 투명하면서도 나름의 미감을 충분하게 드러내는 미술관의 올곧은 시각을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와 시대를 읽기 위한 미술관의 수집품은 오직 미술품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시할 수 있는 실물뿐 만 아니라 모형이나 모사, 사진 등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 보조 자료가 없이 그 자료, 작품 자체만으로 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작가와 관련한 유품이나 기타 자료들도 미술사적인 사실들을 증거 해 줄 따라서 일반적으로 전시에 사용되지는 않지만 미술관에서 길이 보존해야 할 성질의 자료들도 많이 있다. 고로 미술관의 자료라 함은 작품과 그 방계 자료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 경우 작품이 더 중요하고 보조 자료로 구분된 것은 소홀히 취급해도 된다는 인식은 적절하지 않다.
미술관의 수장고에 들어온 모든 작품, 자료는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다.
미술관의 작품을 획득하기 위한 정책은 미술관의 기본적인 설립목적을 반영해야 하며, 미술관의 존재의 이유는 소장품 확보와 이의 과학적인 보관, 관리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제로 현실에 반영해야하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오늘의 사회를 ‘읽을’수 있는 미술품 수집은 사실은 매우 어렵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의 사회와 문화를 당장 분석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품 수집을 위해 이를 발굴하고 조사 연구해야 하는 학예연구원들의 경우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또 연대기로 분절시킬 수 없는 시간의 연속성으로 인해 향후 5년 뒤, 10년 뒤의 사회적 평가를 예감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항상 따른다.
이는 향후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될 현재의 사회현상, 미술현상을 판별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수집을 위한 조사연구는 다름 아닌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중요한 가 뿐 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이, 어떤 사조나 화파가 또 작품이 중요한 사회현상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가 주는 교훈 중 가장 큰 것은 인간의 독특한 성징으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고 가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사조나 유파, 운동들 중에서 어느 것을 가려내어 미래의 관점에서 ‘중요하다’라고 단언해야 한다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고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다.
미술관은 있으되 소장품은 없다 ?
미술관이란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 우리들의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의미뿐 만 아니라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강한 것이다. 과거는 역사이며 오늘도 내일이면 과거가 된다. 미래도 멀리 내다보면 과거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오늘의 미술은 내일의 과거이기 때문에 수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미술관은 일반적이고 평범하게 정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기구이자 시설이다. 이는 소장품으로부터 비롯된다. 소장품을 확보하고 관리하고 조사하고 연구하며, 때로는 수복하는 매우 복잡한 절차와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기자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먼저 모든 미술관은 이런 기본 정의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지만, 그 범주는 매우 넓은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스펙트럼의 한 끝만을 보더라도, 수많은 전문직원이 있는 거대한 국립미술관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작은 도시에 소박한 동네 미술관이 사회 공동체, 지방 자치체 또는 단체 또는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물론 크기와는 상관없이 그 기능적인 정의는 같은 경우가 있듯이-마치 백화점과 24시간 편의점의 기능이 일부는 같듯이- 그러나 그 운영의 규모와 복잡함은 엄청나게 다르다. 우선 규모에서의 차이 때문에 - 예산, 건축, 인원구성, 소장품 혹은 방문객숫자를 참조하더라도 - 미술관이 무엇을 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해 간단히 대답한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대한 스펙트럼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 바로 작품의 수집이다. 모든 미술관은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어떻든 일차적으로 미술품 수집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장품은 시청각 자료를 포함하여 3차원과 2차원으로서 대중에게 미술문화와 유산에 대한 원천적인 자료를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 소장품은 모든 인간의 창조적인 열정을 망라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수장하고 있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약 60여개의 등록미술관이 한국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 들 미술관중 어떤 작품을 수집했다거나 중요한 미술품을 입수했다는 기사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60여개에 달하는 많은 미술관들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법적 등록요건인 소장품 100점 이상이라는 인 등록요건을 충족시켜 등록을 필 한 이후에는 작품수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작품 수집이 좋은 작품을 발굴하기도 어려울 뿐 만 아니라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미술시장의 원리와 흐름에도 정통한 큐레이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단순하게 미술관의 재정적 능력으로 미루어 둘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술관의 가장 기본은 작품의 수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관을 평가할 때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많이 매년 수집했느냐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물론 수집 작품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질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미술관 문화환경에서는 소장품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 일뿐이다. 이는 미술관의 운영주체인 설립자나 자치단체장 또는 국가의 미술관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미술 분야의 전문인들도 소장품의 내용보다는 한번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전시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질 높은 미술품의 수집은 뉴스가 되지 못하지만 한번의 전시는 충분한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배경의 일부는 미술관의 설립 시부터 작품수집이 간과되어 온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의 유수한 미술관의 처음 출발은 거의 모두 기증 또는 개인이 소장한 미술품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즉 중요한 미술품을 대중과 시민들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로부터 시작되어 이 미술품들을 보관하고 전시할 건물을 마련하면서 출발한다.
그런데 우리 미술관의 대부분은 소장품의 확보 보다는 건물이 우선시 되어온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즉 미술관의 출발기점을 작품의 수집으로부터 잡아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데 서 일차적인 문제는 이미 발생 한 것이다.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도 처음에는 소장 작품 없이 출발했다. 국전이 문교부로부터 문화공보부로 이관되어 옴에 따라 전시장으로서 미술관이 시급했던 탓이었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왕가 미술관이 소장했던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 서화류의 대부분을 이루는 미술품들을 같은 해 5월에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하고 새롭게 소장품 한 점 없이 단순한 전시시설로 출발한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971년이 되어서야 작품 수집비로 500만원의 예산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1985년경 까지도 1억원에 불과한 소장품 수집예산을 확보했으나 최근 들어 미술관의 소장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소장품 확보 및 관리예산이 40억원에서 50억원에 이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소장품 관련 예산을 보면 일견 매우 많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일부 작고작가들의 작품 가와 비교해 보면 10여점 구입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다시 외국의 미술시장과 견주어 보면 해외의 중요작가 작품 4-5점가에 불과하다. 국립미술관의 경우 최근 들어 형편이 좀 나아졌다고 하나 그런데 지방의 공립미술관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경우 약 5억, 최근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경남도립미술관의 경우 5억원에 이르나, 가장 역사가 깊은 예향을 자처하는 광주시립미술관의 경우 소장품 관련 예산이 1억 5천만 원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사립미술관의 경우 호암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작품소장관련 예산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국공사립 미술관중 미술관의 기본을 갖춘 미술관은 5-6개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렇게 인색한 것만은 아니다.
나오면서
미술관과 소장품의 상관관계는 부모와 자식 같은 것이어서 부모 없는 자식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소장품 없는 미술관이란 상상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상상속의 일이 현실로 통용된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개 할 수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진정한 미술관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방법은 요원 한 것일 까.
물론 미술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지만 미술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변화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공사립미술관을 지원하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원을 전제로 한 평가가 필요하고 그 평가 시 매년 작품수집의 수와 질을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결과에 따라 경제적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미술자산의 사회화, 공공성을 담보해내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을 통해서 개인의 자산이 사회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이는 곧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또한 미술관에 개인이나 단체 또는 법인이 중요한 미술품을 구입하여 기증하는 경우 세제상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외국의 대부분의 미술관은 미술관 자체예산으로 그리 많은 작품수집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미술관들이 부러워 할 만 한 예산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소장품은 대부분 기증에 의존한 것이다. 중요 소장품은 거의 모두 기증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기증에 나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제상의 혜택이 가장 큰 유인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국가에 내 놓는 것보다는 미술관에 금전으로 또는 작품으로 기부 함으로써 세금감면의 혜택도 누리고 자신의 이름은 자신이 기증한 미술품에 늘 따라다니는 영원히 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수집과 관련해서는 작가들의 기증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렇게 종횡으로 기증을 유도하는 구조적인 장치 즉 시스템을 운용함으로써 미술문화를 통한 문화 복지, 문화 민주주의 구현할 수 있는 것이며 미술문화를 획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 출처 / 상계학사
http://www.forumcjc.com/board/view.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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